통합진보당 내 논의 중에 유시민이 “왜 이 당은 공식행사 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 제창 등 국민의례를 공식행사에서 시행하는 것이 좌파들의 국가관에 대한 보수세력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과거 운동단체로서 부당한 독재권력에 대항할 때엔 ‘민중의례’라는 대립항이 필요했으나, 이제는 합법정당으로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 만큼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최소한의 승인이 필요하고, 그 승인이 국민의례를 통해 드러난다 생각했을 수 있다. 일리는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상황을 살펴보니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합당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논의가 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민주노동당에서 치러지던 ‘민중의례’가 ‘진보의례’라는 이름의 혼합물로 대체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되,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 계열 당원들 중에선 국민의례가 군사독재의 유산인 국가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다.
2010년 10월 1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사실 유시민도 2003년 개혁당 당시엔 국민의례가 여기저기서 자주 시행되는 것에 대해 일제 잔재나 군사파시즘의 잔재로 본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혹자는 이를 말바꾸기로 보지만, 내 생각엔 두 견해를 조화시킬 방법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유시민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다고 주장한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자연스럽단 인식이 국민들에게 있는데,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벽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애국가를 거부하는 게 그토록 가치 있는 일이냐”고 그가 묻는 이유도 그래서일 게다. 반드시 불러야 한단 게 아니라, 거부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쪽이다.
나로서는 당 행사에 국민의례를 하든 민중의례를 하든 애국가를 부르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든 별 감정은 없다. 국민의례를 의식적으로 거부할 만큼 국가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는 않았으나, 민주노동당에 처음 입당했을 때에 민중의례하는 것을 보고 이게 여기 사람들 문화려니 했다. 내가 하는 걸 남들이 안 한다고 “나를 국가주의와 파시즘에 물든 얼간이 취급하는 거냐?”라고 묻는 건 좀 이상하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말이 그런 종류의 말이다.
또 생뚱맞은 건 국민의례를 안 한다고 매국노는 아니란 걸 알 유시민이 “애국가 거부의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만들면 나올 것 같은데, 그냥 하기가 싫은 게 아닐지? 웃긴 건 내가 보기엔 훨씬 더 국가주의적인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받아들였으면서 맹숭맹숭한 애국가는 부르지 못하겠다고 한 민주노동당 쪽 타협안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하나만 불러야 한다면 애국가가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택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조합해 보면 양쪽 모두 자신들의 지지자를 위한 정치적인 싸움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정치세력이 그런 걸 하는 게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행사에서 시키면 무심하게 부를 수는 있지만, 내가 애국가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에 노동계급의 서사가 숨어 있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광주의 서사가 박혀 있다면, 애국가엔 우리 민족의 형성이나 독립에 대한 서사가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안 보인다. 그냥 민족도 국토도 국가도 처음부터 있었고 그게 영원하면 된단 얘기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내게도 애국가는 누가 시키지 않으면 흥얼거릴 일이 없는 노래다. 내가 민족주의 우파라면 이 노래를 고치고 싶을 것 같다.
한윤형<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