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를 넘어 JOY를 건설하겠다”
지난 5월 10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을 대선주자 자격으로 처음 만났다. 킹메이커, 정권의 2인자, 친이계 좌장…. 이름 앞에 붙었던 이런 거창한 수식어가 지금은 오히려 넘어야 할 큰 벽이 돼버린 지점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했다.
킹메이커가 킹이 되고자 하면 희화화될 수 있다. 정권의 2인자는 그 정권과 함께 심판받거나 퇴장하는 게 마땅하다. 친이계는 이번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지리멸렬했다. 정세 판단을 이렇게 한다면 그가 깃발을 들고 나온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의원은 “나는 다른 킹메이커와 다르다”고 말했다. 정권의 2인자라는 표현에는 “정권 탄생의 2인자였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친이계의 ‘공천 학살’에 대해서는 “당을 온전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체제가 출범한 다음날인 지난 5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황우여 대표체제에 대해 “우려된다”고 비판했는데….(웃음)
“원래 우려되니까. 대선 전에 들어서는 지도부는 우선 경선을 무리 없이 잘 치러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경선 룰과 날짜를 후보들이 합의할 수 있어야 해요. 당권을 잡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면 후유증이 생기잖아요. 이미 황우려(이 이원의 발음)씨가 한쪽 편에 서 있기 때문에 과연 중립적으로 관리할 것인지 우려되는 거지요.”
친이계 중에는 심재철 의원이 지도부에 들어갔잖습니까.
“일곱 명 중에 한 사람인데 무슨 역할을 할 수가 있겠어요. 최고위원회가 화백회의처럼 만장일치제도 아니고. 그냥 당권파 의도대로 밀고 나가기 위한 거죠.”
친이계는 계파 자체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거의 소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회의원 중심의 계파는 없어진 거죠. 하지만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던 전국의 많은 개인과 조직은 아직 상당수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심 의원이 3등으로 지도부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봐요.”
공천 과정에서 친이계가 ‘학살’당했다고 표현했는데,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한 게 이상합니다.
“친이로서는 어떻든 이명박 정권을 만든 정당인데 스스로 당을 깰 수는 없잖아요. 다소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기는 하지만 당권이 넘어간 이상 당권 잡은 사람이 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잖아요. 친이가 학살을 당하고도 참고 있었기 때문에 당이 총선을 치를 수 있었지, 저항했으면 새누리당은 깨지고 총선에서 그냥 참패하게 되는 거죠.”
말하자면 살신성인을 했다는 얘기군요.
“친이가 계파는 죽었지만 당은 그대로 온전하게 유지시켜준 거죠. 그 점을 친박이 잘 알아야 돼요.”
이 의원은 전국 16개 광역시·도를 도는 1차 민생투어를 마치고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이때 발표한 ‘국가대혁신 5대 방안’은 혁명적인 내용이라고 할 만하다. 요약하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전국 50개 자치시, 국회의원 200명으로 행정 및 정치구조 개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남북대표부 설치 ▲공동체적 시장경제 실현 등이다. 이 의원은 이 인터뷰 마치고 전국 234개 기초시·군·구를 도는 49박50일의 2차 민생투어 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5대 방안에 대한 공감폭을 넓히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개헌 문제는 당위성과는 별도로 과연 선거국면에서 정치권과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면 취임 6개월 안에 개헌을 하겠다는 거니까 지금 국면에서 호응은 별 의미가 없잖아요. 대통령 중심 체제가 갖고 오는 사회적 부패와 갈등, 권력의 부패와 분열, 그런 것들을 치유하기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나누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내가 제안한 것이니까, 거기에 대한 공감은 앞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얻어야죠.”
여권 후보 중에서 일부 호응은 있는 것 같은데, 박근혜 의원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봅니까.
“박근혜 의원이 오늘부터는 ‘원 오브 뎀’이잖아요. 후보 중 한 사람이니까. 출마(선언)를 하게 되면 개헌에 대해서 뭔가 입장을 밝혀야 할 거예요.”
나머지 임기를 포기할 정도로 분권제 개헌을 중시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의원의 개헌안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박 의원을 밀어줄 의향도 있습니까.
“아, 새누리당 후보들이 다 받으면 누가 되든 경선이 좀 부드럽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대통령 권한과 총리 권한을 분리하고 총리도 국회에서 선출하는 게 되니까요. 나는 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하나만 해도 대통령으로서 역사적 임무를 다한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국회의원 총수를 200명으로 줄이는 건 이 의원에게 별로 실익이 없는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정치권이 받아들이겠습니까.
“국회의원들은 반대하겠죠.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자가,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국가 틀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개인의 실익보다 국민과 국가를 보고 정치를 해야 되지 않겠어요. 각 도를 다녀보니까 제일 원하는 게 국회의원 수 줄이는 것이더라고요.”
세 번째 부정부패 부분은 공수처 신설이 핵심인데, 이건 좋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실세라고 하는 분들이 속속 구속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이재오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들 합니다.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정권의 2인자로 불린 이 의원께서 왜 이 대통령의 측근 부패를 막지 못했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내가 말이 실세지… 부패를 막으려면 검찰총장을 하든 법무부 장관을 하든 사정기관을 담당해야 되잖아요. 옆에서 훈수 들어갖고는 안 되죠. 권력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자리가 없이 밖에 있으면 아무리 실세라도 집행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 직접 해서 공수처를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국민에게는 좀 충격일 거예요. 아, 이재오니까 가능하다, 이런 소리 나올 거예요.”
그럼 말만 실세지 허세였다는 것입니까.
“허세가 맞지.(웃음) 그런데 꼭 허세라고만 볼 수는 없겠죠. 사람들이 날 그렇게 보지 않으니까. 방금 얘기했듯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아무리 실세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영향력을 끼치면 간섭이 되잖아요. 난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대통령한테 직언할 수는 있잖습니까.
“그야 하죠. 수시로 하지만 내가 언론에 공개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습니까.
“많이 된 부분도 있고, 안 된 부분도 있죠. 내가 함부로 직언은 안 하잖아요. 대통령이 권한이 있고 역할이 있는데 내가 옆에서 선거 도왔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간섭하면 그것도 옳지 않잖아요. 꼭 필요한 건 ‘이건 이렇습니다’라고 얘기는 하지만 돌아가는 모든 걸 직언하는 건 아니니까.”
출마 선언을 하면서 “현 정권의 공과를 다 안고 가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역할을 못 한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억울하지. 억울하지만 국민은 내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실세였다고 보는데 이 정권의 운영에 깊이 관계를 안 했다고 해서 이 정권을 만든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정권의 공과 과를 안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 내가 이루려고 했던 국가, 내가 이루려고 했던 국민 행복은 이런 거다, 내가 하려고 했던 대통령은 이런 상이다….”
이 의원의 말이 길어졌다. 그의 슬로건인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었다. 청와대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은 따로 비서와 한 건물에 배치하고 토·일요일에 아이들 손잡고 지하철로 나들이하는, 그런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대통령상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국회의원 낙선하고 권력에서 떨어져 있고 권력구조가 그렇게 안 돼 있어서 못 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헌정구조를 개편하고 나라의 틀을 바꿔서 새로운 창조적인 대통령상을 만들겠다는 거죠.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만날 MB 2인자라고 하고 무슨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고, 또 내가 대통령 한다고 그러니까 에이, 무슨 킹메이커가 킹 되려고 하느냐, 이렇게 해버리니까 내가 속이 타지.(웃음)”
킹메이커라는 별명은 그가 이 대통령을 서울시장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답답한 심사를 드러냈다.
“킹메이커도 킹메이커 나름이잖아요. 기술적, 테크노크라트식 킹메이커가 있고 가신적 킹메이커가 있잖아요. 나는 동지적 킹메이커고 정치적 킹메이커지, 그러잖아요. 나더러 또 킹메이커 하라는 거는 나를 진짜 잘못 보는 거지.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내가 하려던 것을 이 정권이 못 했으니까 내가 직접 하겠다, 내가 갖고 있는 정치적 창조적인 국가의 가치관을 새로 세우겠다, 이런 거예요. 단순히 킹메이커가 킹 된다는 차원으로 보면 안 되죠. 내 마음 속에 갖고 있던 건 원래 킹이었는데, 딴 사람이 먼저 킹을 하겠다고 하고 그 사람 좋으니까 먼저 킹을 시킨 것이지….”
이 의원을 잘 아는 사람은 이해하겠죠. 그런데 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대운하, 4대강 전도사’를 자처한 것입니다. 예전에 알던 이 의원과는 전혀 다른, 가장 이재오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을) 대통령 만들려고 한 거요. 대통령이 되려면 국가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되잖아요. 이 대통령은 생각이 토목적이기는 하지만 대운하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까 나처럼 기술에 문외한인 사람은 감성적으로 기가 막히더라고요.”
지금은 본인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잖습니까. 그렇다면 이재오답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새로운 성찰이랄까,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운하 하기 전에 내가 자전거로 한 번 탐방을 했잖아요. 이번 7·8월에 4대강변 정비가 어느 정도 끝나면 정말 한 번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돌아보려고 해요. 민주화운동을 했던, 생명을 존중했던 이재오의 철학을 갖고서 말이죠. 잘못됐다거나 보완할 점이 있으면 가감 없이 여론을 들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논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입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면 4대강을 반대했던 자들의 입장에 서서 어떻게 보완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겠습니다.”
이 의원이 제시한 국가대혁신 5대 방안의 나머지 두 주제는 남북관계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것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5대 방안은 결국 제왕적 대통령, 의회정치 파행, 부정부패, 남북관계 파탄, 양극화 심화 등 모두 현 정권의 실패를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원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에요. 내가 그걸 MB 정권 때 하고 싶었는데 못했기 때문에 직접 하겠다는 거죠. MB 정권에서 그걸 다 했으면 나야 행복한 국민으로 돌아가는 거지, (대통령을) 할 필요도 없죠.”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이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허허허.(웃음)”
MB와 차별화하겠다고 제목을 뽑아도 되겠습니까.
“MB를 넘어 JOY를 건설하겠다….(웃음)”
JOY는 영문 이름(Jae-Oh Yi) 이니셜로 만든 그의 애칭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한 그는 ‘안고 넘겠다’는 표현의 수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박근혜 의원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비판은 삼갔다. 트위터를 통해 ‘깜이 엄마’의 입을 빌려 에둘러 표현하는 게 전부인 듯했다.
트위터에 자주 등장하는 깜이 엄마가 실존인물입니까.
“많이 물어보는데, 실존인물이에요. 북한산 밑 조그만 동네에 사는데 비운의 여인이에요. 한국 현대사에서 굴곡마다 가족이 희생당했어요.”
오래 알던 분입니까.
“한 3년 됐나. 몰랐는데 자기가 깜이 엄마라고 해서 알았지. 새벽에 산에 갔다 내려오는데, 있는 대로 욕을 하는 거라. 날 보고 첫 마디가 ‘어이 이재오, 날 몰라?’, ‘예?’ 그러니까, ‘내가 깜이 엄마야’라고 그래요. 트위터의 글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중에 극히 정제해서 올리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방안을 갖고 있어도 대통령이 돼야 실현할 수 있잖습니까. 지금의 경선 룰과 당내 역학구도로는 결과가 뻔할 텐데, 이 부분을 어떻게 헤쳐나갈 생각입니까.
“당 후보를 뽑는 결과는 물론 본선 경쟁력에 있어서도 결과가 뻔하죠.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중대한 결심들을 해야죠.”
중대 결심이라면 그게 무슷 뜻입니까.
“정권 창출이 우리의 요구니까 그걸 위해서 완전국민경선제와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건데, 안 받아들이고 그냥 혼자만 가겠다? 하~(잠시 생각한 뒤) 그때 가서 결심을 해야 안 되겠어요.‘
어떤 내용입니까.
“내용을 얘기하면 그건 중대 결심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