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입한 정당이었다. 정당에 왜 가입했느냐고? 진보정당 학생위원회 아이들은 총학생회 계열의 운동권 아이들과 약간 달라 보였다. 그래서 당비 내는 대학생이 되고 싶었지만, 당비를 내야 하는 수고에 견줘 내가 얻을 자부심이 더 커 보이진 않았다. 함께 술을 마시고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기는 했지만 뭔가가 걸렸었다.
직장인이 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내가 배워온 교양의 세계에선 ‘어느 당이든 상관없이’ 정당에 가입하는 작은 행동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종류의 선언적 상식이 존재했다.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은 그런 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어느 당이든 상관없긴 왜 없겠는가? 대충 이번 선거의 선택지만 봐도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 수준의 반응을 이끌어내더라. 반MB라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 야권연대가 임하고 그 뜻이 서울에서는 이뤄졌지만, 지방에서는 안 이루어지더이다.
19대 총선 투표일인 4월 11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당이 어려워진 때에 가입했고 약간의 당비는 늘 자동이체가 됐다. 당 게시판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지역구 모임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그저 당비만 내왔다. 대개 그런 모임은 서로의 진정성을 위로하는 슬픈 술자리일 것이다.
당원들의 교류는 서로 자폭하거나 연민으로 자위하거나다. 원래 연대와 진정성은 입금으로 증명한다는 시니컬한 구호도 있지 않나. 선거 전에는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다. 애당초 이 당에 들어온 이유였던 분들이 다른 소속을 달고 선거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당의 강령과 논평과 당대표의 글이 좋았다.
선거 일주일 전 퇴근 길. 당 상근자가 ‘초대가수에게 미안해지는 비 오는 유세 현장’이라고 올린 트윗을 보고 서둘러 현장으로 갔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당대표는 비가 와도 좋다며 노래에 맞춰 춤도 추고 인사도 하고 사회자와 연신 구호도 외치며 뭐가 좋은지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저 피켓을 같이 흔들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웃기만 해도 행복한 천막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고작 경찰 2명이 전부였다.
선거 전 주말, 후원이 필요하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바로 이체를 했다. 당대표는 고맙다며 멘션을 보내셨다. 내 또래 세대는 그의 교양서들을 읽고 자랐다. 전날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들은 모두 이 당에 가입했다며, 상근하는 ○○○님 때문에 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모두 트위터에서 ‘맞팔’하는 사이였다.
그 당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이런 거였다. 좋아했던 저자들, 세상을 보는 시선과 논리를 가르쳐준 분들이 다 그 당을 지지했다. 일상의 치열함과 냉정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어떤 식으로든 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 당의 당원들이었다. 돈이 없는지 공보물은 안쓰러웠어도 상근자들은 끊임없이 재밌는 걸 기획해냈다.
나는 2주 동안 즐거운 꿈을 꿨다. 유명인들이 투표율 공약을 내세울 때 혼자 이 당이 3%를 넘게 되면 내 책을 내 돈 주고 사서 팔로어들에게 뿌리겠다고 말했다. 인세 빼기 저자 구매가 곱하기 팔로어 2500명…. 정말 3%가 넘으면 어떡하지? 여전히 정치란 어떤 영역인지 모르는 나는 그저 좋아하는 당의 논평을 더는 못 볼까봐 선거 기간 내내 들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 같은 당의 선거송을 찾아 듣는다. “된장녀 혐오의 정치 버전이 바로 이번 총선 때 튀어나온 20대 여성 투표율 8% 루머”라는 트위터 사용자 ‘쟁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별로 강남스럽지 않은 20대 여자인 나는, 투표권을 행사할 날은 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