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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수다” 말할 수 있는 사회

입력 2012.04.17 17:36

고성국 빼곤 새누리당 승리를 예측한 정치평론가가 없었다. 나도 틀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서울의 여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6·2 지방선거와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의외의 선전도 서울 얘기였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서울지역 20대 투표율이 60%를 넘겨 전국의 20대 투표율을 견인했고, 그 이면엔 SNS를 통한 여론 형성과 ‘안철수 열풍’으로 대변되는 중도층의 이동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제 야권의 과제는 반MB 정서에 기대는 대신 정책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서울’의 성공사례를 전국적 단위로 확산시키는 것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꼼수팀은 총선에 주자를 내보내는 것보다 박근혜의 동선을 따라 지방투어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나 같은 인간이 볼 수 있는 건 민주당도 봤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통찰하는 능력과 상사를 설득하는 능력은 별개이며, 대부분 같이 가지는 않는 법이다.

4월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미관광장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연설을 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4월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미관광장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연설을 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총선 결과 분석이나 향후 비전과 상관없이 ‘정치평론가’로서의 나에게 관심이 가는 주제는 ‘왜 한국인들은 자신이 다수가 아님을 두려워하는가?’의 문제다. 답변이야 간단하다. 전쟁과 독재,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생사가 엇갈리는 일을 겪은 경험은 여론의 향방에 신경을 쓰고 다수에 붙어야 한다는 일종의 정언명령을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찍은 사람은 언제나 붙었어”란 말을 자랑으로 삼는 수많은 유권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들의 ’불패’ 신화는 2002년에 절반 이상 깨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다수·주류·보편·상식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의식이 만들어낸 역작용이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다수가 아니라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형성된 ‘다수지향성’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기 자신을 ‘다수’라고 우겨야 만족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났다. 우리는 ‘침묵하는 다수’라는 조선일보의 오랜 레토릭을 기억한다. 눈에 보이는 숫자에서 다수가 아니라도 그들을 ‘다른 생각을 하는 다수의 국민’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친북세력의 세뇌를 받은 이들’이란 시선을 유지한다. 이는 소위 개혁세력에서도 정확하게 반복된다. ‘깨어 있는 시민’이나 ‘국민의 힘’과 같은 레토릭에서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즉 이명박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시민권을 박탈당한다. 그들은 ‘조중동의 세뇌를 받은 이’로 취급당한다. 조중동의 영향력은 끝났고 SNS의 힘을 예찬하던 이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조중동 프레임의 여전한 영향력’을 운위한다. 진실을 말한다면 조중동도 이 선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고, 차라리 방송사에게 책임을 묻는 게 온당해 보인다. 하지만 미운 놈이 조중동이니 책임도 그들에게 돌아간다.

끊임없이 ‘다수’임을 확인해야 하는 의식은 소수파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 나는 업무 때문이 아니라 재미로 나꼼수를 청취한 적은 없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1.1% 정당투표율을 기록한 정당에 투표했다. 이 두 개의 사실에서, 혹은 둘 중 하나의 사실에서만으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는 ‘도덕적 우월감’이나 ‘지적 허위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거야”라고 추측한다. 물론 한국에서 소수파를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에게 그런 종류의 ‘허세’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이 사실들에서 저런 추론을 하는 게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알 수 있다. 한화 이글스나 넥센 히어로즈를 응원한다고 본인이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반면 서울팀이나 롯데를 응원한다고 야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겠는가? 내가 진보신당을 지지한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사회조차도 진보정당 운동의 목표 중 하나인 듯하다. 

한윤형<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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