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이 책을 절판하겠다며 “세상에 준 기여보다 부정적 폐해가 더 많게 된 책이며, 청춘들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삼게 된 책이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걸 알리바이로 삼는 이 시대…. 그리하여 <88만원 세대>는, 저자인 내가 보기에는 이 시대에 필요 없는 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저자인 박권일은 “절판의 이유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공저자 중 1인으로 절판에 동의한다”며 “책의 한계는 우석훈의 말대로 ‘싸우지 않을 핑계를 제공해서’가 아니다. 실망했다는 식의 주장은 책에 대한 과대평가이며, 책의 한계는 일차적으로 저자들에게 있고 그 한계를 청년세대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우석훈·박권일의 공저 <88만원 세대>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판에 동의하는 것은 책의 시대적 역할과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권일은 2009년 우석훈이 “이 운동에는 좌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우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중도 그룹이 있을 수 있다”며 변희재의 실크세대론을 축복할 당시 “<88만원 세대>의 저자 중 한 명으로서 내가 늘 부끄럽고 고민스러운 건 <88만원 세대>를 가장 열심히 읽는 20대가 이른바 명문대생이란 점이었다. 정작 88만원 세대에 한없이 가까운 20대들일수록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며 책의 한계를 밝힌 적이 있다.
<88만원 세대>는 몇몇 친구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내 첫 직장은 이 책의 문제의식으로 유사좌파 버전의 당사자 운동을 하던 희망청이었다. 20대 문제를 다루는 영상집단이 있었고, 청년유니온이 설립되었으며, 많은 거리와 현장에서 20대는 (비록 10대에게 쏟아지는 조명 뒤에 있었지만) 마땅히 출몰했다. 서울대 본관이 점거되었으며 대학을 거부했고, 20대를 다룬 출판물이 쏟아져나왔으며, 청춘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시대의 교양이 되었다. 청년당이 나왔고, 어쨌든 좌우파 버전은 있을 수 있다는 그의 말대로 손수조는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20대 필자론이 등장했고, <88만원 세대>의 답변이 되는 책들이 나왔다. 이들의 시도는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절차보다 저자의 의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출판계에 몸 담고 있는 처지에서 무책임한 저자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그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책을 쓰고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문화로 먹고살기’야말로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움직이는 책의 판매를 중지하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몇 사람의 밥줄이 이미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채 3년도 되지 않았다. 기이하게 담론의 책임자로 살아야 했던 지난 몇 년의 노고에 고맙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작업은 계속 되어야 한다.
‘88만원 세대’는 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각종 청춘 장사나 위로 담론으로 변태한 현실을 개탄하지만 원래 이런 세상 아니었던가. 저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책이 생명력을 가지듯,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을 설명하는 하나의 탁월한 용어였으며, 더 이상 누군가의 의지나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핑계 삼는 목소리들은 사실 이 책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공감해 자신의 방식으로 던지는 짱돌일지도 모른다. 설령 책을 읽고 짱돌을 던지지 않았다고 비난하려면 대상은 그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 전부가 되어야 한다. 늘 은퇴를 말한 그가 삭발 후 내놓은 결심이 절판이라면 나 역시 바리케이드를 치지 못한 멍청한 독자로서 삭발하고 인세를 돌려달라는 AS를 제안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실현되지 못하고 이용당한 명분이라면 <공산당 선언>이야말로 진작에 사라졌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