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상변동이 생겼다. 몇 년간의 ‘자유기고가’란 이름의 백수생활을 끝내고, 모 인터넷 언론의 기자가 된 것이다. 주변 반응은 좀 더 준비해서 공채를 통과한 직장인이 되지 그랬냐는 힐난의 시선과 어쨌든 월급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는 축하인사가 엇갈렸다. 여기저기 지면에 쓰던 글의 대부분은 계속 써야 했기에 사실상 ‘투잡스’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내 머릿속의 글 분류는 ‘돈 받는 글’과 ‘돈 안 받는 글’의 이분법에서 ‘회사 글’, ‘돈 받는 외고’, ‘돈 안 받는 외고’의 삼분법으로 바뀌었다.
자유기고가 시절 수입은 인세와 원고료 합쳐서 연 900만~1000만원 정도였으니 이걸로 생계를 해결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노동시간이 적다는 걸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고, 총량으로 봐도 최저생계비 이상은 되지만, 이 금액이 12등분 되어 매월 일정한 시기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쭉날쭉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금액이 월급에 더해지면 좀 살만하겠단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첫 월급 전이라 관념일 뿐이다.
생활 패턴이 바뀌면 졸음이 찾아온다. 사진은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한 직장인. | 경향신문
더 이상 글을 받지 않는 곳도 생겼다. 한국 사회는 대부분의 경우 ‘기자’를 글쟁이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특히 일간지의 경우 타사 기자의 글을 자기 지면에 싣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 어떤 일간지는 더 이상 글을 받을 수 없다 통보했고, 다른 일간지는 직함은 여전히 ‘자유기고가’로 표기하겠다고 제안했다.
주간지나 인터넷 매체 같은 경우는 상황이 좀 더 나았지만, 대부분 타사 기자로 직함을 표기해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신상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시차적응을 해야 했다. 나는 잠을 얕게 자는 편이라, 자유기고가 시절엔 일이 많을 땐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 일고여덟 시간 활동하는 등 하루를 두 개의 사이클로 사는 편이었다. 종종 외출할 일이 있더라도 대부분 12시간 사이클 내에서 해결가능했다. 그래서 출근 첫날 전날에도 나는 1시에서 5시까지 네 시간 잔 후 제 딴에는 상쾌하다고 아침운동까지 하고 회사를 나갔다. 처음 사흘 동안은 예전 습관대로 잠이 들어도 몇 시간만 자면 깨서 엄청나게 피곤했다. 잠을 길게 자고 나가기 위해 수면유도제가 필요할까 잠깐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나흘째가 되자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녁도 먹지 못한 상태로 골아떨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11시만 되면 졸리기 시작했고 11시에서 7시까지 8시간을 잤다. ‘바른 생활 패턴’을 찾았다고 축하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선 11시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아직 있는데도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칼퇴’ 하는 편인데도 집에 들어가면 다른 글을 더 쓸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외고는 주로 아침에 일어나서 썼다.
자유기고가 할 때는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일하는 게 수월했는데 이젠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봤자 6시였고 그때부터 한시간 반 정도를 일하다가 출근하게 되었다. 주말에는 오전에 일어날 수 없었고, 해가 중천에 뜨는 시점에 일어나 활동을 시작했으며, 정신의 쾌락을 위해 조금 저항해 봤지만 새벽 1~2시엔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뻗어서 잤다.
그러나 가장 큰 변동은 글쓰기 자체에서 왔다. 자유기고가였을 때, 나는 납득이 안 가는 언론보도를 보면 현재 상황에서 그들이 왜 그런 보도를 했는지 추론하여 글을 쓰곤 했다. 그런데 매체비평지 기자가 되고 나니, 이제 추론할 일은 줄었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일이 되었다. 내게 코멘트를 따기 위해 전화하던 그 기자들에게 이젠 내가 전화를 해야 했다. 어떤 기자는 타사 기자에겐 더 이상 코멘트를 딸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전화질을 하다가 문득 이젠 이 사람들이 내 전화를 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간경향 기자님들, 전화 계속 받아주세요!
한윤형<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