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새벽 4시에 퇴근해서 청탁 들어온 원고를 써서 5시에 보내놓고 그제야 한 시간 설익은 잠을 자던 그런 생활을 하게 했던 직장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웠던 경험이야 많고, 빠듯한 일정에 맞춰 달려야 하는 일을 처음 겪은 게 아닌데, 지하철에 선 채로도 숙면할 수 있다는 신체의 비밀을 그제야 알게 됐다. 당시에 쓰던 다이어리에는 이런 숫자들이 적혀 있다. 8시 반 출근, 12시 23분 퇴근. 8시 반 출근, 2시 19분 퇴근. 8시 10분 출근, 1시 5분 퇴근. 8시 20분 출근, 3시 57분 퇴근.… 이 시각을 적어놓은 건 금요일 오후, 아마 그날의 퇴근시간을 적지 못한 걸 보면 야근을 했었나보다. 대충 봐도 일 평균 17시간, 야근수당 없음.
출근길 직장인들로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 | 정지윤 기자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회사, 자잘한 마케팅으로 이미지도 좋아 젊은 층이 선호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이쪽에서는 제법 중요한 포지션에서 하는 일이라 꼬박꼬박 거래처들로부터 ‘님’ 소리를 들으며 일했다. 그러나 오전 내내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었고, 별명은 ‘돌’이었다. 항상 핸드폰으로 착신된 전화로는 하루 수십 통의 벨이 울렸다. 나는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거나 매시간 들어오는 매출 문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우연히 만난 인권운동을 하시는 분은 근황을 듣더니 야근수당 소송을 걸고 나오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 아는 노무사를 소개해줄 테니 기업의 야근문제를 한 번 짚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재잘거리는 일이 줄었다. 우선 시간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몸이 물 먹은 솜이 되어 그날의 주요 이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양치질을 하면서 타임 라인의 리스트를 훑었고, 결재서류를 들고 가며 트윗을 하고, 밥을 먹으며 RSS를 확인하거나, 점심을 빵으로 때우며 기사를 읽고, 야근을 하며 이어폰을 꽂고 인문고전강의 MP3를 듣고 또 들었다. 책이나 개인의 작은 행동이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인생을 사는 나에게,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버틸 수 있는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무척 괴로웠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게 의미가 없더라.
그런데 아마 이걸 보고 내 또래들, 정규직 직장인들은 “당연한 거 아냐? 뭘 그런 걸로 엄살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나약했다고 치자. 물론 모두 이렇게 일하는 건 아니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 몰입을 하는 경향이 있고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하며 남들만큼 절대 시간과 열정을 투입해야 스스로 만족해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힘들게 한 건 근무조건이나 회사가 아닌 ‘내 안의 열정 노동’이다.
퇴근하는 딸과 출근하는 아버지가 길에서 마주치는 생활은 익숙해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이 재밌으면 그만인가, 남들 역시 그렇게 산다는 게 위로가 될까? 2~3년을 이렇게 보내면 편한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 거라고 힘들게 취직한 동료와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게 맞는 건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사람들은 직장을 관두면 작은 카페를 열거나 동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타적 삶에 대한 ‘소박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 ‘이 일이 맞는 건가’를 고민하던 지인이 어느 미국 사회적 기업가로부터 “소셜 이펙트가 있는 일(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당신 나이에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착취당하던 시절을 벗어나 ‘소셜 이펙트’를 꿈꾼다.
김류미<‘은근 리얼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