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각성’에 대하여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정치적 각성’에 대하여

입력 2012.02.14 17:31

요즘 들어 ‘정치적 각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실소한다. 그런 게 없다고 단언할 생각은 없지만, 최근 쓰이는 문맥이 참 ‘괴랄하다’(‘괴이하다’의 강조어 정도로 쓰이는 인터넷 은어). 이를 테면 “정치인들은 다 똑같아”라고 냉소하거나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이명박이 미워 야당에 투표하게 되면 “정치적으로 각성했다”고 말하는 그 어법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그렇게 변하면서 무슨 지식이나 통찰의 증가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본다. 

물론 새로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들에게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시도들의 의미를 부인할 필요는 없다. <나는 꼼수다>의 의의를 크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관심’이란 게 아직은 위태위태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지난 1월 2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공연 현장.

지난 1월 2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 공연 현장.

정치적 관심을 ‘각성’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세력들의 책임의 문제를 잡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2007년 선거와 2008년 선거의 패배를 ‘민주세력’의 것으로 성찰하기를 거부하고 사악하고 부패한 정치인을 알아보지 못했던 ‘국민’의 오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꼼수’가 BBK 문제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그에 있을 것이다. 또 ‘나꼼수’ 멤버들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도로, 참여정부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믿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그들의 작업에 찬탄을 보내고 예찬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런 도식은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쉽게 야권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이 교체된 후 민의를 어떻게 수렴하고 개혁은 어찌 추진할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필자에게 요구하는 건 “네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지금은 먼저 정권을 바꿔야 하는 비상상황이니 토를 달지 말라”는 거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우리가 지금껏 그런 핑계로 해야 할 고민들을 유예해 왔기에 참여정부도 국가를 통치하기가 그렇게나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민 없이 동원되었기에 그 좌충우돌에 쉽사리 실망하고 다시 냉소적 태도로 귀환하는 것이 지난 10년의 역사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그 ‘정치적 각성’의 결말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다시 맹위를 떨칠 “요즘 애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는 힐난에 맞서, 나는 기성세대가 그간 가져왔던 그 ‘정치적 관심’이란 것이 ‘각성’이란 말을 붙일 수준의 것이 되는지 해체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택시기사의 논평을 정점에 찍는 산업화세대의 정치적 관심은 그 정서를 <삼국지>에 기반을 둔다. 이분들은 정치세력 간의 패권다툼에서 정치인들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와 그가 과연 패업(?)을 달성할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한편 이들의 관심을 비웃는 민주화세대의 정치적 관심은 그들이 즐겨 읽지도 않았을 <반지의 제왕>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그들은 사우론이라는 거악에 맞서 싸우는 어떤 연합군의 일원이다. 

물론 이것은 편의를 위한 단순화일 뿐 양 세대의 정치의식은 이 <삼국지>와 <반지의 제왕>을 적당히 섞어놓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가령 산업화세대는 사우론이 ‘김정일’이라 생각하고, 민주화세대 역시 ‘누가 대통령 감인지’에 대해 눈빛만 보고 평론하는 재주를 지녔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해관계의 조정이나 공동체 윤리의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청년층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요구할 때, 내가 관찰한 바 기성세대는 도덕론을 남발하다 느닷없이 ‘정치가 밥먹여준다’는 얘기를 근거 없이 들이밀며 상대방을 ‘포섭’하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한국 정치의 문제는 ‘각성’하지 않은 그 청년들에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각성’이라 믿는 것들의 한심한 수준에 있다.                                

한윤형<자유기고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