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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윗 보안법’

입력 2012.01.17 16:14

작년 9월 21일,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직원들이 사회당 비상근당직자인 박정근씨의 사진관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영장은 박씨가 북한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uriminzok)를 리트윗하고 멘션을 날리는 등 ‘접촉 및 통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유력한 선동매체 도구’인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은 박씨는 며칠 전에 갑자기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인 1월 11일, 박씨는 영장실질심사 결과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박정근씨 | 백철 기자

박정근씨 | 백철 기자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 사유는 주거불명,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 셋 중 하나다. 박씨는 주거가 일정했고, ‘증거’는 이미 확보된 상태였으며, 도주하기는커녕 국가보안법을 규탄하는 행사를 기획, 이에 참여하려던 참이었다. 우리 사회의 보통 어른들이라면 박씨가 조사를 받은 후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나대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고 나무랄 것이다. 만일 영장을 발부한 이들의 심경도 이와 같았다면, 역설적으로 박씨는 ‘구속 사유를 벗어났기에 구속’된 것이다.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고 조용히 근신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박씨가 수백 건의 이적표현물을 ‘취득·반포’했다는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을 들여다보았다. 가끔 들으면 웃게 되는 북한 특유의 비분강개한 어조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트윗들이다. 왜 그들이 ‘리명박 역도’란 말을 쓰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남한 정부를 인정하지 못해 ‘역도’라면 김대중·노무현도 ‘역도’일텐데 그런 표기를 본 적은 없다. 만일 ‘민족’의 관점에서 역도라면 ‘김일성 민족’임을 주장하는 그들은 나와 같은 민족이 아니다. 대체 ‘김일성 민족’임을 주장하면서 ‘우리 민족끼리’라고 말하면 남한의 누구를 품겠단 것일까? 하긴 이유를 따져 물어봤자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열렬히 찬미하는 남조선의 자칭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민족은 하나’ 아니던가. 

만일 내가 점잖은 보수주의자라면 박씨와 그 친구들을 나무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상식인이라면 박씨의 트윗들을 보고 그가 북한을 찬양하기는커녕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유럽에서 아직도 나치와 히틀러를 소재로 한 개그가 금기시되듯, 그 체제와의 전쟁으로 수백만의 희생자가 나온 우리 실정에선 그런 개그가 저속하다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행위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불행한 역사 때문에 네오나치를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독일에서도 나치 십자가와 나치 경례 정도가 처벌대상일 뿐이다. 설령 박씨가 북한에 진짜로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정보를 취득·반포하는 것만으로 처벌하는 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박씨와 친구들이 조사에 항의하는 ‘뉴타운 간첩파티’란 걸 벌이며 ‘김정일, 만세!’라고 외쳐도 더 이상 나무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항의가 바로 그 침해된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박정근 구속’을 끔찍하게 여기는 만큼 그 트윗들에 경악하지 않고 피식 웃는 이유는 북한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행동이 북한 체제를 더 오래 존속시키는 효과를 낳지 못함을 알고, 남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수호하려는 의도임을 주장한다. 한반도 남쪽도 북녘처럼 만들고 싶은 자들이 있다면, 민주시민은 그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은 이렇다. 박정근의 수사와 구속에 항의하기 위해 나는 내 미감에 질끈 눈을 감고 ‘우리민족끼리’를 추종(follow)하고 그들의 정보를 반포(RT)한다. 나만 이럴 것이 아닐진대, 당신들이야말로 북체제를 효과적으로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한윤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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