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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청춘’을 팔지 마라

입력 2012.01.03 18:57

200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최대 히트 상품은 ‘청춘’이었다. 88만원 세대 또는 20대라 불린 청춘들은 언론과 기업들이 저마다 만들어낸 알파벳을 딴 세대 이름을 달고 소비의 주체로 묘사되었다. 젊은층이 꼭 유행을 주도하거나 발랄하거나 열정이 넘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제적으로 증명한 세대기도 했다. 여전히 들을 만한 가요들은 90년대 음악들이고, 질 높은 문화잡지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90년 후반이었다.

청춘은 빚더미다. 사진은 학자금 대출 통장. | 주간경향

청춘은 빚더미다. 사진은 학자금 대출 통장. | 주간경향

지금의 20대는 IMF 경제위기가 가계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자랐으며 그 영향이 개인의 삶을 바꾼 경우가 많았다. 논스톱이 보여준 대학생활의 낭만이 우습다고 말하기보다는 ‘낭만적 논스톱과 88만원 세대’의 간극을 개인적으로 극복할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세대였다. 모든 삶의 저변이 위축되었다. 등단을 해도, 영화를 만들어도, 글쟁이가 되어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자기 사업을 해도 ‘당시의 선배들’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망이 무너진 상태에서 사회에 진입하는 지금의 청춘들은 “예전에는 그랬던 판이었는데”라는 선배들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다.

청년 빈곤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선배들의 방식을 따라하지 말고 자신들의 판을 만들라고. 비정규직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사회적 자본은 축소되었고 창의나 새로운 상상력은 핑계와 명분일 뿐이다. 그나마 경제력을 갖춘 청춘들은 가계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고, 줄어드는 파이에서 속절없이 잉여라 불리기를 차라리 원한다. 능력제 사회라고 생각했기에 어떤 유대나 지연·학연에 대한 의존도가 낮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이 세대의 자기계발서는 착한 생각으로 영혼을 가지고 꿈꾸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경제적인 보상을 얻었다는 롤모델이 쓴 책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치영역을 만들었거나, 혁신적인 디자인의 전자제품을 만들었거나, 백신 개발자였거나, 의사여도 좋고, 성공한 기업인이나 교수였던 것은 당연했다. 독자들은 ‘그들이 되고 싶은 것’뿐이었으므로.

‘청춘’이 히트 상품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청춘들의 절망과 좌절, 빈곤이었다. 20대는 착하고 건전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개인들이지만, 현실은 절망뿐이라는 도식화된 사례를 미디어에 공급해야 했다. 반복되는 기사는 아무리 자극적인 제목이라도 낚이지 않고 그저 씁쓸한 맛을 위한 소스가 되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 또래 세대의 빈곤을 팔아야 하는 것이 같은 세대로서 콘텐츠를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담당업무였다. 

유산이 없는 세대는 시대의 표상을 자신의 관심사나 제일 먼저 택하는 ‘꺼리’로 삼았다. 한편 ‘연대’ 라는 명분을 걸고 만나고 이야기하면서도 ‘잉여’ 속에 숨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공격당해 상처받는 판에서 버텨야 했던 빛나는 또래의 스타들은 ‘뜨겁게 안녕’ 을 외치거나 ‘트위터 봇’으로 사적 영역에서 버티고 있다.

청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는 제자들과 함께 한국 사회를 예측하는 책을 냈고, 역시 잘 팔리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출생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봉건시대를 끝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기심과 감정 없는 ‘현금 지불’이라는 관계만 남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2000년대 한국의 20대와 윗 세대들은 ‘사례 지불’의 관계만 남게 되었다.

역시 빈곤과 좌절을 팔아 이 지면을 쓰게 되었다. 새해에는 공공성을 만들 수 있는 일을 하나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역시 무능을 탓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꿈꾸며 그저 뚜벅뚜벅 걸으며 살아갈 뿐. 20대들이 새해에도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이제 아홉 수다.

김류미<‘은근 리얼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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