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1994년을 떠올린다. ‘김일성 사망’이란 소식이 남한에 던져졌던 그때다. 채 20년이 지나지 않았건만 다른 사회처럼 낯설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부대로 복귀하는 장병들. /박민규 기자
충분히 그의 죽음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에겐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만 신격화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남한에서도 ‘체제의 적’으로, 북한 체제 그 자체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끝으로 여겼고, 단숨에 통일이 앞당겨지리라고 믿었다. 무속인들은 제각기 한 번 긁어본 날짜를 내세우며 그의 죽음을 예측했다고 말했고, 그런 예측은 공중파 뉴스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자 서점가에는 섣불리 통일을 예측하는 소설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실존인물들이 등장했지만, 그것들은 사실상 ‘환상소설’이었다.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 당시 소년경호원 출신으로 당시 호위총국장을 맡고 있던 이을설,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빨치산 1세대 오종흠의 아들인 오극렬 등의 이름이 소설에 등장했다. 그들은 각 소설에서 쿠데타의 주역이 되거나 그것을 진압하는 역할을 맡았다. 심지어는 사마달·유청림이 쓴 정치 패러디 무협지 <대도무문>에도 그들의 이름이 중국식으로 각색되어 등장했다. 어린 마음에 이런 소설들이 너무 많이 나오면 그들의 북한 내 입지가 곤란해지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에 있는 이 이름들을 검색하니 놀랍게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김정일 사후’ 북한 정계를 예측하는 글들에 등장한다. 남한 사람들은 그들이 다투고 분열하기를 바랐지만, ‘김일성 사후’에는 이들이 일치단결하여 김정일 체제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소설만 ‘설레발’이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남한 사회 전체가 설레발이었다. 어쩌면 9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경제력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로 볼 때 지금의 ‘대한민국’과 당시의 ‘남한’을 비교하기 힘들지만,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북한이 붕괴되고 흡수통일이 시작된다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거 좋은 상황이지!”라고 소리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면전이나 국지전의 우려 때문이 아니라도, 순전히 경제적인 부담만으로 보더라도 모두들 그런 상황은 피곤하다고 여길 것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북한 사회의 문제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감상적 통일론자들이 많아서 그랬건, 북한지역을 체제 경쟁 승리의 전리품쯤으로 취급해서 그랬건, 어찌됐든 통일은 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 통일과정에 있을 수 있는 정치·군사적 갈등을 예측하기 위해 예의 그 ‘환상소설’들도 나왔던 것이다.
이 좋았던 시절은 모두가 알다시피 1997년에 끝난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해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통일 환상소설’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에 빠져 세기말을 즐기던 우리는, 느닷없이 꿈에서 깨어나 21세기로 질주하게 되었다. IMF 당시 서울역에 모인 수백명의 노숙자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던 한국 사회는 2000년대 들어 코스닥 열풍에 휩싸이며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잊힌 것은 한국 사회의 약자들뿐만이 아니라 북한 사회이기도 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든 강경책을 원하든 오늘날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사실상 “너희가 없었으면 좋겠어”란 것이다. 한 쪽이 북한이 푼돈이나 받아들고 조용히 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쪽은 그걸로는 달래지지 않는 그들을 윽박질러 조용히 시키기를 원한다. 그리고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이나 김정일 사망 같은 사건이 터져야, 우리는 잠깐 새로운 꿈에서 깨어나 그들의 실존을 직시한다.
한윤형<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