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존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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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존엄함

입력 2011.12.14 15:25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의 복음서 5장 16절, 공동번역성서)

한국에 사는 20~30대라면 유년시절에 교회에 가본 경험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지만 이 가운데 신규 회원 유치에 가장 효과적인 대외 사업을 꼽자면 단연 성경학교였다. 예배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하기도 하지만 2박3일 일정으로 외부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식사시간에는 줄을 서서 성경 구절 암송 테스트를 통과해야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뜻도 잘 모르고 외웠던 구절 하나가 퍽 인상적이었다. 신앙심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말할 수 있었다.

김상민

김상민

대학에 들어가니 운동권과 교회 전도 방식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대표적인 맨투맨 영업. 학교에서 소위 ‘권’도 아니었고, 소심한 학생이던 나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이들과만 어울렸다. 연극 동아리 선후배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 자치 언론, 학생회 등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현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세대였고, 세미나에는 선배들에게 낚여서 들어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선배들은 멋졌다. 그들은 나름 치열해 보였고, 맨투맨 작업은 신입생 새터부터 시작되었다. 의외의 아이들이 선배들에게 혹해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사회를 보는 논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들은 운동권 학생들로 불렸다. 한편 2000년대 자칭 좌파 청년들이 생겨나고, ‘나꼼수’ 덕분에 직장에도 반MB 구호와 일상 지사들이 넘쳐난다. 적어도 트위터를 보면 말이다.

나는 타인을 말로 설득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다. 어느 논객이 일상에서 동네 주민에게 그들의 언어로 진보를 이해시켰다는 글을 보고 그를 존경했지만, 치열하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범인(凡人)으로서 그저 점심시간에 자리에 앉아 조용히 정당 대표단 선거를 마치고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을 뿐이다. 어쩌다 나온 정치적인 질문에는 말꼬리를 흐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간적으로 덜 나쁜 인간이 되고 싶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물었을 때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나 정책이나 세계관을 대답해주는 것뿐이었다. 이런 소시민은 ‘먹고사니즘’을 방패 삼는다. 

다니는 직장이나 하는 일에 모두 엄밀한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가령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에게 ‘그런 책을 내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배치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면, 상당히 난감해진다. 1인 출판사나 창조적 기업 운운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자본가라고 부르기에는 열악하고, 대기업 정규직이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는 사회에서 ‘먹고사니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매체의 상황을 빤히 알게 되고 난 뒤에는 후원이나 정기구독 전화가 오면 거절하지 못한다. 그 배너광고들을 밀어낼 수 있는 구독자 수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한 푼 보태면 된다. 그것도 안 하면서 ‘정치적 올바름’ 운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마저도 없어질 수 있다. 엄한 잣대로 기업의 문제를 인식한 뒤에, 그렇다고 더 큰 독식업체에서 물건을 사는 선택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예수도 말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 돌로 쳐라”고. 그렇게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운가? 난 그 시간에 진심을 담은 맨투맨 영업을 하겠다. 좀 과장되더라도, 사람들을 낚아서라도, 세상이 좋아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일상을 사는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류미<‘은근 리얼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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