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60대 여성에게 뒤통수를 구타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 시장은 15일 오후 2시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실시된 민방위훈련에 참석했다가 이 같은 봉변을 당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박모씨(63·여)는 당시 훈련을 참관 중이던 박 시장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중략) 박씨는 박 시장을 향해 “시장 사퇴해, 이 빨갱이 새끼야! 김대중×의 앞잡이”라고 소리치며 폭력을 휘둘렀다.
서울시가 공개한 박원순 시장이 폭행당할 때의 현장 모습.
경향닷컴에 오른 박 시장의 봉변 당시 상황이다. 박 시장을 폭행한 인물은 지난 8월 15일 청계천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을 폭행했다.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 박씨는 야권 인물들을 폭행하면서 “나라사랑, 국민사랑의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이회창이 떨어져 빨갱이가 싫어졌다”는 것도 폭행 이유였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27일 국회 본청에서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소속 이모씨(68·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면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중략)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전 의원이 낮 12시 45분쯤 국회 본청에서 후문으로 나가는 순간 5~6명의 여자가 달려들어 욕설을 해대며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때렸다”고 주장했다.(2009년 2월 28일자, 전여옥 “민가협 회원에 폭행당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2009년 2월 27일 동료의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국회 의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자료사진
법원은 2009년 5월 이씨와 민가협 전 상임의장 조모씨(58·여)에 대해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죄 선고 이유는 “증인들의 기억이 모두 다른 상태에서 피해자의 인식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였다.
박 시장 사건과는 여러 차이가 있다. 경찰은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박 시장은 경찰에 고발을 하거나 처벌을 해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전 의원 폭행사건을 두고 1면과 사설에 ‘백주의 테러’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민가협 관계자의 반론이나 해명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위로 전화를 걸었다. 박 시장 사건은 보수언론에게 해프닝일 뿐이다. 경향신문 11월 17일자 사설은 “만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등 여권의 유력인사들이 진보단체 회원에게 폭행을 당했어도 과연 유야무야 넘어갔을 것인지 사법당국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피습사건은 여럿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표 시절이던 2006년 5월 선거 지원유세를 나갔다가 문구용 칼에 얼굴 오른쪽 귀옆을 11㎝가량 찢기는 상처를 입었다. 진보·보수언론 할 것 없이 대서특필됐다. 박 전대표는 60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검거된 지모씨는 15년가량 복역한 억울함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병원에서 측근에게 “대전은요”라며 판세를 물은 사실이 공개돼 실제 판세를 뒤집은 일은 지금도 회자된다.
정치인들은 곧잘 공개장소에서 봉변과 폭행을 당했다. 주요 정치인, 대표 정치인들이 많이 당했다. 정치인 봉변사건을 보면, 분단상황과 정치이념·지역갈등이 녹아 있다. 정치인의 봉변 하면 ‘달걀’을 빼놓을 수 없다. 선거 때 달걀 투척 사건이 많았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2007년 12월 3일 경기 의정부에서 유세 도중 계란에 맞는 봉변을 당하자 정태근 수행단장이 옷을 닦아주고 있다. /박민규기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3일 경기 의정부 유세 도중 계란 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이후보는 이날 오후 2시 40분쯤 의정부 중앙로 앞 거리에서 유세를 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다 승려 복장을 한 50대 남성이 던진 계란을 왼쪽 허리에 맞았다. 이 남성은 계란 투척 후 뿌린 유인물에서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 후보는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BBK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2007년 12월 4일자, 李 계란 세례 받고 “내가 주가조작 했겠나”)
당시 이 대통령 후보는 옷에 묻은 달걀을 털어내고 곧바로 유세를 시작했다. 그는 “내가 주가나 조작하고서 이런 데(대선) 나왔겠느냐”고 했다. 그해 11월 13일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구 방문 중 이마에 달걀을 맞았다. 달걀을 던진 이모씨는 “경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선에 출마한 이 후보에게 실망해 던졌다”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11월 13일 한강둔치에서 열린 ‘우리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 갔다가 참석자가 던진 달걀에 턱을 맞았다. 바로 연설을 재개한 노 전 대통령은 “쌀 개방은 최대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 3일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1층 귀빈주차장에서 환송객 70여명과 악수를 나누던 중 재미교포 박의정씨(71)가 던진 붉은색 유성 페인트가 담긴 달걀 한 개를 얼굴에 맞았다. 박씨는 “IMF 환란을 초래한 김 전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 경거망동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고 투척 이유를 밝혔다. 또 “김 전대통령은 옛 동지로 여러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했다. 92년 대선 직전 전국구 공천 요구를 거절당한 일도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 “이 정권은 살인적이고 계획적으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로서 김대중 독재자는 최후의 무덤을 팠다”고 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1973년 8월 14일자.
김 전 대통령이 실제 살인적인 만행을 당한 적도 있다. 공권력이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에게 공공연한 테러를 자행하던 때다. 1969년 6월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 상도동 자택 부근에서 괴한으로부터 초산 테러를 당할 뻔한 것. 초산은 승용차 창문에만 뿌려졌다. 사건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에서 “박정희씨는 독재자요. 칼로 세운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한다고 하는 성경 말씀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유감 표명과 함께 즉각 수사를 지시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신병 치료차 일본에 갔던 1973년 8월 일본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괴한으로부터 납치됐다.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1998년 미국은 문서 공개를 통해 중앙정보부 소행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최소한의 묵시적 승인은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진상 규명은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