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알바’를 전전한 적이 있다. 주로 서비스업에서 일했다. 판매나 서빙 같은 일은 감정노동의 측면이 다분하다. 게다가 이런 일들은 주로 ‘40대 이상의 중년 남자 사장’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고용되어 일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남학생도 여교사를 원하고 여학생도 여교사를 원한다는 과외시장의 농담도 있지 않은가. 만만한 20대 여자가 알바를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경향신문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을 뿐더러, 유니폼이 적당히 어울리는 몸으로 적당히 미소지으며, 적당히 서서, 사람들에게 적당히 물건을 팔거나 매장에서 역할을 수행해내면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친구는 꽤 체격이 큰 편이었다. 그녀는 매장에서 오래 일했지만 한 번도 카운터에서 일하지는 못했다.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패티를 굽는 그녀와 달리 캐셔들은 화장을 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하고 미소짓는 일’을 넘어서면 보다 전문적인 알바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걔 뭐하고 살아?”라고 했을 때 의외로 20대 여자들이 많이 하고 있는 일은 학원강사다. 내가 봐온 학원강사 일을 하는 선배들은 ‘가방끈’이 길었고, 그들은 학비를 위해 학원강사 일을 학업과 병행하고는 했다. 그런데 20대 여자들은 조금 달랐다.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이면서도 진입장벽이 낮은 일. 이게 바로 보습학원 강사였다. 더 이상 “네가 누구를 가르쳐?”라는 농담을 친구들끼리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알바를 하면 초반엔 사장과 나름의 ‘밀땅’을 한다. 신뢰를 받기 시작할 무렵 시급은 오른다. 알바 공고에 있는 ‘시급 협의’라거나 ‘×××원부터’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때쯤 사장들의 사생활이 대충 보이고, 술도 몇 번 기울였거나 하소연을 들어줬거나 계속 일을 할 만한지 ‘간을 보게’ 된다. 대형 체인점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니저나 점장으로 불리는 딱 ‘사촌오빠뻘 관리자인 남자’들이 존재한다.
심심하면 주간지 르포 기사로 등장하는 ‘방’ 관련 일들처럼 유사 성매매 산업 일자리도 존재하지만, 이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다른 일이 있다. 내레이터 모델, 토킹바, 의류 판매직, 바텐더와 같은 일들은 편하게 돈버는 된장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알바들은 시급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외모가 채용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런 시선을 받게 된다. 누군가가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편견이 생긴다. 예쁠 것이다, 좀 노는 아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대부분 하나를 더 추가한다. 한 번 ‘대시’해볼까?
짧은 경험을 떠올리면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20대 여자에게 외모나 애티튜드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일하거나 땀냄새가 묻은 옷으로 육체노동을 한다고 해서 ‘명품에 환장하지 않은 년’이 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어디에 있든 중년 사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주로 아저씨 손님을 상대하는 알바였을 뿐이다. 꼬맹이들이 ‘아줌마’라고 부를 때보다 아저씨들의 반말이 더 불편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아이들은 그 관계를 이용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옵션을 추가하면 되었다. 밤일을 하더라도 ‘학비를 위해서’라거나 동대문에서 옷을 팔아도 ‘내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어서’라거나 뭘 배우러 다닌다거나 낮엔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친다거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 아닌가? 그리고 그순간 눈앞에 있는 ‘그들의 시선’이 부드러워진 걸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가 묻는다.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김류미<‘은근 리얼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