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다 반응이 더 화제가 되는 책이 있다. 93세 레지스탕스 투사의 헌걸찬 육성이 담긴 <분노하라>가 그렇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임희근 옮김·돌베개·6000원
<분노하라>의 프랑스어 원서는 분량이 30쪽에 불과한 소책자다. 책이라기보다는 팸플릿에 가깝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작은 책은 그러나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출간 7개월 만에 200만부가 팔려나가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프랑스 청년들을 향해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라고 다분히 선동적으로 말하는 저자 스테판 에셀은 누구인가.
1917년생인 에셀은 독일에서 태어나 7살 때부터 프랑스에서 살았다. 프랑스 수재들의 집합소인 파리 고등사범학교 재학 중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으나, 이 학교에서 선배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 그의 앙가주망(참여)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망명 드골 정부에 합류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1944년 프랑스 본토에서 체포된 그는 투옥과 고문, 강제수용소 노역을 거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필사적으로 탈출해 살아남았다. 종전 후 외교계에 입문해 1948년 유엔 인권 선언문 작성에 기여했고, 나중에는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를 지냈다. 요컨대 에셀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살아 있는 역사다.
저자는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요청한다. 분노할 줄 알아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분노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 다만 폭력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폭력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다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폭력의 악순환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비폭력이란 상대방의 폭력을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 성향을 정복하는 일”이다.
그가 분노해야 한다고 말한 대상은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조금씩 관철되고 있는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분노하라>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정치하게 분석한 책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처럼 영감과 통찰로 빛나는 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독자들은 이 책에 격렬한 환호를 보냈다.
한국어판에 포함된 인터뷰에서 저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때맞춰”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중요한 순간’이란 일차적으로는 프랑스 사회이겠지만, 그의 진단은 오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울림을 남긴다.
“이 사회는 더 이상 개개인의 노력에 응분의 보답을 해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신뢰하지도 않는 체계 속에 어느새 편입되어버렸습니다. … 바로 이 시점에 시민 대중은 묻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