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예방이냐, 자기결정권 침해냐
적용 게임물 범위 합리적 설정과 과몰입 이용자의 환경 개선 필요
<주간경향>·국회 입법조사처 공동기획
국내 게임산업은 지난 2000년 이후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외 수출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 수출은 2002년 1억4000만 달러에서 2009년 12억4000만 달러로 최근 7년 동안 10배 이상 늘었다. 2009년 기준 국내 문화콘텐츠 수출 총액의 47%나 된다.
한 청소년이 게임에 몰입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그러나 게임 과몰입 증상을 가진 게임 이용자의 살인, 자살, 영아유기 등의 사건이 최근 잇달아 발생하면서 게임 과몰입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게임 과몰입 문제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추세다. 국회는 심야시간에 청소년에게 정보통신망을 통해 게임물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게임 셧다운제’(심야시간 게임접속 차단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게임 셧다운제가 본격 실시될 전망이다.
이르면 10월부터 ‘게임 셧다운제’ 실시
게임 셧다운제는 지난해 4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심야시간대(0~06시) 19세 미만 청소년에 대해 정보통신망을 통한 게임물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하 청보법 대안)을 의결하면서 도입이 추진됐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이 법률안이 게임 과몰입 예방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과 중복된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협의해 새로운 조정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지난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간의 협의가 이뤄졌고, 법제처에서 협의 내용을 반영한 수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법제처의 수정안에서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서 심야시간대(0~6시)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게임물 제공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후에도 게임 셧다운제의 적용대상에 스마트폰 게임을 포함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정부 부처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제도 도입이 지연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2년 주기로 게임 셧다운제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게임물의 범위를 평가해 결정하기로 협의했다. 지난 4월 20일 ‘청보법 대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처럼 게임 셧다운제 실시가 눈 앞에 다가왔지만 이 제도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학계와 게임업계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예방이라는 이 제도 도입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반대한다. 한국입법학회 등 일부 학계와 국내 온라인·모바일 게임사업자가 주 구성원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 셧다운제를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일괄 적용하기보다는 청소년 본인이나 부모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시민단체들은 또 다른 상황이다. 청소년보호 관련 단체와 청소년인권 및 문화예술 관련 단체 간 시각 차가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19세 미만 청소년 전체에 대해 심야시간대 온라인게임 및 스마트폰게임 제공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소년인권단체 및 문화예술 관련 단체는 이 제도가 청소년이 게임에 중독되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이 추진되고 있으며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문화예술 관련단체 ‘시각차’
게임 셧다운제의 도입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사항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게임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는 게임물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청보법 대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에 대해 포괄적으로 게임 셧다운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당초 ‘온라인게임’을 염두에 둔 것이었으나, 법률 문안에 따르면 스마트폰 게임, 온라인매장을 통해 판매되는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 등에까지 확장 적용될 수 있어 규제를 받는 사업자의 입장에서 혼란이 우려된다. 특히, 현행 규정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과 관련성이 적은 간단한 플래시게임을 제공하는 포털사이트의 경우에도 게임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청보법 대안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협의하여 2년마다 적용대상 게임물의 범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게임 셧다운제의 실제 적용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용 범위를 결정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결정과정에서 게임산업 분야와 청소년보호 분야의 의견이 동등하게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둘째,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임 과몰입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는 ‘게임물이 가지고 있는 중독성’ 이외에도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환경적인 특성’이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저소득층일수록 높아지고 다문화가정·한부모가정의 청소년이 특히 높은 중독률을 보였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게임 과몰입 예방’의 관점에 한정해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존에 정부에서 추진 중에 있는 인터넷 중독 예방·해소 사업, 다문화가정·한부모가정 지원 사업 등 관련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관련 정부 부처 간 공동으로 협의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조형근 문화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