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혈세로 살려 채권단에 ‘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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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혈세로 살려 채권단에 ‘단물’

입력 2011.01.06 15:05

공적자금 투입기업 매각 문제

매각 절차·기준 명확히 국민과 노동자 이익 앞세워야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해 채권단, 현대그룹, 현대자동차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을 지명했으나, 자금조달 등의 문제를 들어 현대그룹의 자격을 박탈했고, 이에 현대그룹은 채권단과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됨에 따라 향후 일정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결국 이 문제는 해를 넘겨 새해 벽두부터 여론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가운데) 등 현대건설 채권단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현대건설 인수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가운데) 등 현대건설 채권단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현대건설 인수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이러한 국민적 관심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간과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건설의 기업가치에는 국민의 혈세가 녹아 있다는 점이다. 즉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하기까지 총 3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망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현대건설 인수 희망자로 참여한 범현대가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이후 무려 24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편 현대건설 매각과정에서 가장 큰 실리를 취한 주체는 채권단이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을 매입할 당시 주가가 2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인수 주체가 누가 되든간에 채권단은 약 7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교훈은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매각과정에서 채권단의 인수 적격자 심사기준이 합리적이지 못했음을 인수 참여자 및 국민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즉 현행 채권단의 심사기준을 적용할 경우, 결과적으로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기업에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며, 이득은 채권단이 누리며, 혈세를 투입한 국민은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대우건설 매각 사례에서 보듯이 인수기업이 인수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자산을 매각하는 등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금번 매각이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은 심대한 실정이다.

범 현대가 투입 공적자금 24조원 넘어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에 대한 문제는 워크아웃 졸업 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조속 매각의 원칙 및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매각대금 극대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는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나, 공적자금의 투입 취지에 비추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재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절차에 대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 선정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즉 우리나라의 법체계상 금융회사가 아닌 기업의 인수에 대해서는 적격성 심사 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하 공적자금법) 제19조(자산의 매각 등)’는 ‘정부,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및 한국정책금융공사는 공적자금으로 보유하게 된 금융기관의 주식 등 자산을 적정한 가격으로 매각함으로써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 정부 보유 자산의 매각시 국민 부담 최소화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금융기관의 합병·전환을 규정하고 있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4조와 제5조는 금융산업 합리화, 금융구조조정 촉진 등 여러 기준 및 절차를 규율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양자의 형평성 문제는 해소되기 어렵다. 그 결과 현행 기업 인수 적격성 심사는 채권단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기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둘째, 정부가 내세우는 매각대금 극대화는 공적자금의 성격에 반한다. 공적자금의 투입은, 기업의 생산활동 중단으로 인해 겪는 손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공공성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화된 기업의 매각 대상자 선정은 공적자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진행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가 매각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인수회사가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소위 ‘승자의 저주’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무리한 인수 자금으로 ‘승자의 저주’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해보면 첫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과정에 대한 절차와 기준을 명확히 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공적자금법’ 제1조는 “공적자금의 조성·운용·관리 등에 있어 공정성, 전문성, 투명성을 높여 공적자금의 효율적 사용을 도모하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율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빌딩. | 김기남 기자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빌딩. | 김기남 기자

그리고 이 법 제19조는 매각에 대해서 국민 부담 최소화의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 절차와 기준을 규정하지 않은 점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채택한 ‘매각대금 극대화’는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동 법의 입법 취지에 반하고 있어 보다 합리적인 대안의 마련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 제4조에서 규율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매각 기준 및 절차에 준하는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부실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공공성을 감안하여 ‘공기업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 제20조를 준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 조항은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증시에 미치는 충격의 완화, 주식의 광범위한 분산, 대상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당해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자의 자격 및 매수수량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으로, 이를 준용함으로써 공적자금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서 부실기업을 회생시킨 이유는 그 기업이 국민경제상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적자금은 국민경제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제공되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만 향후 이와 같은 사례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국민이 되살려준 기업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경영자에 의해 경영되어야 하며, 채권자의 이익보다는 기업 회생에 기여한 국민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새주인을 찾은 기업이 한국경제와 같이 성장하면서,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매각 과정에서 전문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행 ‘공적자금법’ 제3조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설치 및 기능에 정부 등이 보유하는 주식 등 자산의 매각에 대한 심의·조정을 포함하고 있는 바, 이 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통해 부실 심사와 불투명한 매각절차가 발붙일 수 있는 여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현대건설 매각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매각 일정에 급급하여 졸속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제기된 모든 의문을 충분히 검토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정부와 채권단은 시장의 신뢰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도영 입법조사관<경제학 박사>
<주간경향>·국회입법조사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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