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사는 착수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지하철 CCTV를 보고 찾아야지요. 글을 올린 분이 신천역에서 탔다고 했죠? 두세 정거장 지나서 들어온 것을 보니 CCTV 보면 나와 있을 것인데….” 지하철수사대 2지구대 문광식 팀장의 말이다.
한 누리꾼이 찍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성추행 현장 동영상. | 네이트 동영상 캡쳐
12월 1일, 한 동영상과 사연이 급속도로 퍼졌다.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사내가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런데 사내의 손이 자꾸 여성의 허벅지 쪽으로 들어간다. 성추행범이다. 동영상만 본 누리꾼은 “연인일 수도 있지 않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영상과 함께 게시된 동영상을 찍은 ‘사연’을 보면 확실히 이 남자가 치한임을 알 수 있다. 즉 여성이 먼저 앉아 있었고, 중간에 남성이 탔는데 빈 자리도 많은데 유독 옆자리에 붙어 앉더라는 것이다. 낌새가 이상한 걸 느낀 사연을 올린 주인공(편의상 A씨라고 하자)은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찍었다. 이 중년사내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A씨는 동영상 찍는 것을 중단하고 “아저씨! 그만 좀 하시죠”라고 소리를 질렀다. 중년남성은 힐끗 본 뒤 자는 척하다가 얼른 내렸다.
동영상을 올린 A씨는 “제 3자인 내가 신고해도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나 없나 고민만 한 것이 후회된다”며 “(여성 분들이) 얼굴이라도 보고 피하라는 뜻에서 동영상을 올린다”고 밝혔다. 글에 따르면 남자는 사당역에서 내렸다. 이 경우 이수역에 자리잡은 지하철수사대 2지구대 관할이다. 문 팀장은 “CCTV만 확보되면 범인이 누군지 밝히는 것은 거의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건 수사기법상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추행이 친고죄라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여성이 처벌 의사를 밝혀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설령 동영상과 같이 뚜렷한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스스로 처벌해달라고 연락해오지 않으면 정식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사’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문제의 남성 신원은 금방 밝혀졌다. 46살 조모씨. 신천역 이후에 신도림행 막차를 탄 손님들의 CCTV 분석을 통해서다. 수사 기법은 알고 보니 간단한 것이었지만, 향후 다른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사실 여기서 안 들춰도 다른 보도를 통해 이미 다 공개됐다). 같은 기법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도 찾아냈다. 열차가 막차였기 때문에 이 여성이 내린 역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기 때문에 몰랐을 것”이라는 일부의 추측과 달리 장모씨(26·여성)는 “성추행을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워 말을 못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을 보고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1일 밤 늦게 지하철수사대에 연락, 자수했다. 공분한 누리꾼이 ‘신상털기’에 나서는 것을 보고 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경찰 측은 밝혔다. 동영상 공개가 잘한 일인지 논란도 있었지만, 신속한 사건 종결에 도움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누리꾼은 조씨에게 ‘더듬남’이라는 별명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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