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지음·김희정·안세민 옮김·도서출판 부키
자본주의에 관하여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중요한 진실들이 있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자유 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야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 반자본주의가 아닌,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다. 교수의 안내를 4개의 범주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경제 시민권자인 우리는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부자 감세’ 논쟁도 마찬가지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둔다고 해서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트리클다운’ 이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부자들에 대한 과도한 세금 감면 정책의 정체를 직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들어온 것처럼 이런 감세정책이 우리 모두를 더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드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일까. 특정 자연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가 최근 들어 성장 실패를 경험한 주된 이유는 정책, 즉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요한 자유무역, 자유 시장 정책에 있다. 따지고 보면 자유무역, 자유 시장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은 자신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그런 정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유무역, 자유 시장 정책을 사용해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을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경제계획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소금이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소금만 먹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도리어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교수의 일관된 주장이다.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잘 설계된 복지정책이 있는 나라 국민들은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오히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규제 완화도 정반대의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규제들 중에는 반기업적인 것보다 친기업적 성격을 띤 것들이 더 많다.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다.
넷째,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최근의 기술 혁명에 사로잡혀 시각이 왜곡될 경우에는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경제 아래서 기술력이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교수의 전작들을 죽 읽어온 독자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동어반복은 아니다. 논리는 정교해졌고 눈높이는 낮춰졌다. 이 책이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독점적 이데올로기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라는 우상에 대한 도전이다. 파괴다. 그리하여 ‘경제 시민’들에게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자각시킨다. 늘 그렇듯 문제는 시민이다. 시민권이다. 시민으로서의 명예로운 권리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