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만화에서 볼 수 없는 ‘병맛만화’… 영화·연극 원작으로 각광
만화가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물>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쩐의 전쟁> <식객> 등 만화 원작 드라마에 이어 곧 방송될 <매리는 외박중>은 인터넷 연재만화 웹툰이 원작이다. 게다가 <타짜> <식객> <미녀는 괴로워>와 더불어 웹툰 대표작가 강풀의 <순정만화>는 영화판에 진출했고, 만화 원작의 연극도 나왔다. 만화 종주국 일본에 수출되는 만화도 속속 등장할 정도이니 만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점치는 이도 있다.
웹툰 작가 이말년 |정용인 기자
하지만 만화계에서는 한국 만화시장을 괴사상태로 진단한다. 만화 전문 출판사 애니북스의 천강원 편집장이 들려주는 출판만화시장의 현실은 암울하다. “과거에는 만화잡지와 출판만화가 만화시장을 이끌었다. 10년 전부터 만화잡지가 줄을 이어 폐간돼 만화가들이 연재할 공간을 잃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만화시장은 붕괴된 셈이다. 지금은 학습만화가 만화시장을 대표하고 있다.” 주간지·월간지 등을 통해 연재되던 만화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시기와 맞물렸다는 분석도 있다.
종이로 인쇄 출판된 만화가 쇠퇴하면서 등장한 것은 웹툰. 이제는 누적 클릭 수 6억 회 이상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낸 초인기 웹툰도 등장했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만화 소비자가 콘텐츠를 즐기는 매체가 바뀐 것이다. 포털사이트의 트래픽 중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상명대학 만화학과 고경일 교수는 웹툰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등장했으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웹툰 성공은 국내 인터넷환경뿐 아니라 만화 주소비층의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웹툰을 보는 세대는 자기 의사 표현 욕구가 강하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작가와 독자 의견이 상호 반응할 수 있는 웹툰이야말로 새로운 웹2.0세대에 맞는다. 전통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특화된 것이 우리나라 웹툰이다.” 게다가 표현 방식과 이야기 전개까지 전통만화와는 뚜렷한 구분을 보이고 있다.
독특한 이야기와 표현 네티즌에 인기
웹툰 작가 조석 |박재찬 기자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나 이말년의 <이말년 시리즈>는 전통만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인기 수위를 달리고 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황당하고 허무한 결말로 소위 ‘병맛만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뭔가 병든 것처럼 이상하지만 멋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만화 내용은 심각하지 않다. 현실을 유쾌하고 황당하게 비판하며 재창조하는 위트로 네티즌의 인기와 지지를 받는다. 그림체마저 예쁜 펜선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지 않고 다소 거칠고 추상적이어서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힘을 지니고 있다. 종이 위에 먹선으로 일일이 그리지 않고 태블릿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업방식도 독특한 만화체가 태어난 배경이다.
전통적인 만화가 입문과정은 대개 유명 작가의 화실에서 밑그림을 그려가며 도제식으로 실력을 쌓고 공모전을 거쳐 만화잡지에 연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웹툰이 등장하면서 그런 복잡하고 긴 절차가 사라졌다. 누구나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으면 하루 아침에 만화작가로 활동하는 게 가능해졌다. 조석이나 이말년의 경우도 그렇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연재를 마친 <신과 함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주호민 작가가 웹툰을 그리게 된 계기는 다소 황당하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학과에 다니다 입대했다. 제대하고 나니 학과가 없어져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고, 황당한 기분에 군대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그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게 되니 얼마 후 연재 제의가 들어오더라.” 그가 처음 받은 원고료는 없었다. 신인이니 게재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던 그는 지금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은 인기 전업 작가다. 여러 면에서 그는 운이 좋았다. 이례적으로 악플이 달리지 않는 작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특성상 삽시간에 유명세
웹툰이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적인 내용이 재미있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는 우리 고유의 신화와 저승관을 독특하게 해석한 만화라는 평을 받았다. 작가는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더 재미있고 현실적인 세계관이 우리 신화 속에 담겨 있어 재미있게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대학생 작가 호연의 웹툰 <도자기>는 우리 도자기를 둘러싼 흥미로운 내용과 감동적인 해석으로 연재 당시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출판된 후에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술사학도인 작가의 지식이 웹툰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 | 주호민 제공
대개의 인기 있는 웹툰은 네티즌에 의해 무차별 퍼나르기와 링크로 삽시간에 유명세를 탄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석환 팀장은 웹툰의 가장 큰 변화는 만화 편집권의 전환이라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전문 편집자들이 흐름을 주도했다. 그러나 웹툰은 편집기능 자체가 없어진 셈이다. 사용자들이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직접 편집해가고 있다. 작품 창작경향은 사라지고 소비경향이 시장을 주도해 간다.” 단순히 예쁜 그림뿐 아니라 탄탄한 서사구조로 현실을 반영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일본 만화계마저 흥미로운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웹툰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역시 경제적 문제다.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콘텐츠를 즐기는 대가를 지불하기보다 포털 사이트 트래픽을 발생한 보상으로 작가에게 고료가 지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유료화가 쉽지 않다. 신인작가에게는 최소한의 대가도 지불되지 않는다. 다만 인기를 얻은 후 원고료가 오르거나 책 출판 이후 인세를 받는 것이 고작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캐릭터 개발과 부가상품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웹툰시장의 대부분은 다음과 네이버 양대 포털사가 잡고 있다. 작가들도 포털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수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포털사는 모바일용 웹툰 감상 전용 앱을 보급하는 등 웹툰의 흡인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들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될수록 만화계의 불안과 걱정도 커진다. 작가들과 만화출판계는 웹툰 유통의 새로운 틀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웹툰시장 규모를 1000억원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출판만화시장이 10년째 700억원 대를 유지하는 데 비하면 눈에 띄는 발전이다. 웹툰은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가 낳은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는 움직임과 소리, 특수효과까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파괴력 있는 웹툰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인터넷 환경과 네티즌이 함께 만든 새로운 문화유전자 웹툰의 경쟁력 있는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