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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에 살어리랏다

입력 2010.07.14 14:17

방송국은 매년 정기적 또는 부분적인 개편을 통해 신선함을 불어 넣으려고 애쓴다. ‘개생개사(改生改死)’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편에 살고 개편에 죽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제작진은 프로그램별로 이삿짐을 싼다. 제작진의 이삿짐이라고 해 봐야 괴나리봇짐 정도지만 개편을 위한 프로그램은 규모부터 다르다. 세트부터 새로 짓고 촬영장비와 조명,배차까지 신경쓰다 보면 ‘세종대왕님’ 얼굴에 0이 몇 개 더 붙게 되고 이렇게 불어난 제작비를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며 새로운 제작기획서를 쓴다. 

SBS 버라이어티 <런닝맨>은 개편을 맞아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SBS 버라이어티 <런닝맨>은 개편을 맞아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세상 좋아져서 결재판이 필요없는 전산결재가 떨어지면 이내 프로그램은 새 단장을 하며 활력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MC가 늘 ‘개편의 꽃’인 만큼 3초 이상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방송국에선 MC를 한 번 정하려면 늦어도 6개월 전부터 섭외할 연예인과 모종의 섬싱이 있어야 공백이 없고, 서로의 조건이 평행선이면 낫싱이 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되는 게 현실이지만 이렇게 힘들게 프로그램에서 만났다고 해도 시청률 20% 이상 ‘섬싱 스페셜’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 

이유가 뭘까. 얼굴만 봐도 대한민국이 다 아는 섭외 1순위 연예인들은 6개월 또는 1년 전에 이미 대기표를 끊고 발을 담가 놔도 항상 뜨뜻미지근하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 제작진에서 먼저 줄을 댄 까닭이다. 또한 이제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른바 뜨는 연예인들은 프로그램에 MC로 고정되면 이미지가 정형화되는 점을 우려해 잠깐 보조출연자로 나오는 등 단타로 치고 빠지고 싶어한다. 고정된 스케줄보다 지금 한창때 CF로 최대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새로운 MC의 숨겨둔 재능을 부모도 아닌 제작진 입장에서 발굴하기도 어려운데 서로의 새로움이 통(通)했다 하더라도 캐릭터가 잡히지 않으면 또 다른 낯설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싸늘하게 외면 당하게 되니 과감한 도전(?)을 요구하는 제작진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예인도 항상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미 화성을 돌아 명왕성을 향해 간다. 그래서 개편(改編)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리라.

새롭게 도전한 개편 프로그램이 의외로 반응이 좋으면 살아남겠지만 방송국 전파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성적표가 나오는 시청률 차원에서 보면 ‘시청률이 낮으면 전파의 낭비다’라는 편성팀의 눈초리에 살짝만 걸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음 번 개편 때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사라진 대한민국의 개편 프로그램은 얼마나 많을까? 개편을 통해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PD의 입장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방송국 사무실의 불이 꺼지지 않고, TV를 틀면 여전히 3초 이상 공백 없이 방송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만든 방송을 보고 듣고 있으며,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밝게 나아지기를 바라는 작은 사명감과 희망으로 내일 당장 프로그램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7전8기로 다시 일어선다. 흐르는 물이 고여 썩지 않기 위해, 어떠한 프로그램도 시청자라는 지엄한 시어머니를 피할 수 없기에 아쉬움과 푸념과 어려움은 새로운 개편을 준비하는 새 희망으로 잦아들며 오늘도 ‘목동 별곡’을 부르면서 새 날이 밝아 온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개편에 살어리랏다. 너보다 시름이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편집하노라~. 

이호석 PD SBS<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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