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이후 국가 위기 대처만 잘했더라면…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이명박 대통령이 3월 26일 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커버스토리]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이후 국가 위기 대처만 잘했더라면…

입력 2010.04.08 10:49

  • 권순철 기자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에 서해상에서 침몰했다.
사고가 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4월 2일 현재까지도 실종된 해군 장병 46명에 대한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이 엄청난 국가 재난에 대한민국 위기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한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3월 26일 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3월 26일 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서해상에서 갑자기 침몰했다.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대응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돼야 했을까.

사고 일주일이 지난 4월 2일 전문가들의 말을 참고해 바람직한 위기관리대응체계를 재구성했다.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해군은 즉시 육·해·공군의 지휘를 총괄하는 함동참모본부(합참)에 긴급상황을 보고한다. 합참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비서관에 이 같은 상황을 지체 없이 보고한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천안함의 침몰 소식을 보고한다.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다. 유사시를 대비해 마련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이 대통령은 김태영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보고를 받는다. 특히 보고 받는 시점이 천안함이 두동강이 나 가라앉고 있는 상황인 만큼 최우선으로 승조원들의 구조 대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회의 중에 함수 쪽에 있는 58명을 구조했으며, 실종자 46명 대부분이 타고 있는 함미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대부분의 실종자들은 가라앉은 천안함의 격실에 갇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보고도 함께 들어온다. 우선 이 대통령은 비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안보 부문에 추호의 허점도 없도록 대비하라는 명령을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내린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천안함 함수와 함미에 타고 있는 승조원 구조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장비를 신속히 현장에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대통령은 밤 늦도록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할 명확한 메시지를 작성하도록 참모진에게 지시한다. 이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직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천안함 침몰사고의 원인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과 실종자 구조를 위해 이러저러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발표한다.

군 장성 출신 국방·안보 보좌관 필요

◀천안함 함수·함미 발견 지점

◀천안함 함수·함미 발견 지점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재난·안보관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천안함 사고 직후 실종자가 있는 천안함 함미가 가라앉는 긴급한 상황에서 초동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음에 따라 승조원 구조가 늦어지는 등 중대한 약점이 노출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참여정부의 전직 고위 관료는 “1차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천안함이 가라앉고 있으므로 부양시킬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면서 “이 대통령은 해군의 모든 장비를 현장으로 집결시키도록 하는 지시을 내리고, 바지선 동원 등 민간시설도 총동원하라는 협조 요청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이후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무려 네 차례나 개최했다. 안보관계장관회의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김태영 국방, 유명환 외교통상, 현인택 통일 장관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등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3월 26일 초계함 침몰사건이 발생하자 밤 10시에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한 데 이어 27일 오전과 오후 총 네 차례의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시간여 만에 승조원 58명을 구조한 이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종자 구조를 위한 모든 행위가 굼뜨기만 했다. 실종자 구조를 위한 기뢰 탐색함, 대형 크레인 등 구조장비의 투입은 한없이 늦어지기만 했다.

이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 장관은 “우리 군의 초기 대응이 잘됐다”고 평가해 국민들의 분통만 샀다. 한 위기관리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위기관리시스템 자체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면서 “이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면 참모들이라도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조언해야 했다”고 말했다.

해군 초기대처과 사후대응 비난 받아
전문가들은 긴급한 안보·재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반복된 연습을 통한 체득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볼 때 과거 참여정부는 비교적 전 국가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청와대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두고 외교·안보·국가의 핵심 기능에서 긴급 상황이 일어났을 때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NSC 사무처에는 정책조정실, 전략기획실, 정보관리실, 위기관리센터가 있었다. 위기관리센터에는 위기 발생시 각 부처가 대응해야 할 주요 매뉴얼 30여 가지가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무 매뉴얼을 270여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매년 각 부처가 모여 위기에 대한 대응 연습과 위기관리 평가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 같은 연습의 결과로 태풍, 산불, 조류독감(AI) 발생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NSC 사무처가 폐지됐으며, 그 대신 위기상황정보팀이라는 임시조직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때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따라 국가위기상황센터라는 조직이 생겨났지만 업무 분야 등에서 참여정부 당시 위기관리센터와는 비교가 안된다.

일각에서는 안보관계장관회의 멤버가 국방장관을 제외하고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병역면제자 또는 보충역 출신이어서 군 관련 위기관리가 허술하지 않은가 하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과거 정부 때처럼 군 장성 출신의 국방 또는 안보보좌관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가위기상황센터의 총책임자인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군·안보 관련 전문가가 아닌 정통 외무관료 출신이란 점도 지적을 받는다. 군사평론가 이선호 박사는 “안보 문외한인 경제학 전공자(김 수석)를 임용함으로써 사실상 국가안보가 마비되도록 그동안 방치한 것”이라면서 “안보 분야는 수장 없이 요원 몇 명만이 업무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군 해난구조대 송무진 중령이 3월 30일 국방부에서 열린 천안함 침몰 사고 브리핑에서 실종자 수색 상황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해군 해난구조대 송무진 중령이 3월 30일 국방부에서 열린 천안함 침몰 사고 브리핑에서 실종자 수색 상황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국가적인 차원의 위기관리 문제와 함께 군의 위기관리시스템도 비판받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해군의 늑장 대응이 비난을 사고 있다.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한 고속정(PKM)은 고무보트(RIB; 구조용 고무보트)조차 탑재하지 않아 천안함이 침몰하는 상황을 그냥 지켜봐야만 했다. 또 구명정을 갖추고 있는 속초함은 북한 쪽 경계를 위해 현장에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어야 할 해군 링스헬기는 사고 발생 1시간 50분 뒤인 밤 11시 2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그나마 구명장비가 있는 해경이 사고 발생 70분이 지난 10시 40분에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에 착수해 함수에 있는 56명을 구했으며, 2명은 어업지도선이 구조했다. 해경이 10분만 늦었어도 함수 침몰로 승조원 일부가 조류에 휩쓸려 갈 수도 있었다.

실종자 다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함미 부분의 위치를 찾는데도 해군은 헤맸다. 우선 침몰하는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에 부이 등 표식을 하지 않아 침몰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해경이 작성한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부이가) ‘천안함에 직접 연결한 것이 아님’이라고 밝히고 있어 침몰 후 위치 파악을 위한 부이가 함수에 설치되지 않았음이 명확히 밝혀졌다”면서 “해군은 부이를 함수에 설치했으나 조류에 유실돼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가라앉은 천안함 함미를 찾기 위한 기뢰수색함(소해함)의 투입도 늦었다. 위치 파악이 가능한 기뢰 탐지함의 현장 도착 시간은 3월 28일 오후로 승조원들의 한계생존시간(69시간)을 불과 몇시간 남겨 놓지 않고 도착했다. 경남 해군 기지에만 있는 기뢰탐색함이 사고 발생 10시간이 지난 27일 오전 7시가 돼서야 겨우 출발했기 때문이다. 기뢰 수색함인 양양함과 옹진함은 해저 탐색과 음파를 이용해 기뢰나 선체를 탐색하는 음탐기(VDS)를 보유하고 있다. 기뢰 수색함이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실종자 46명이 대부분 갇혀 있는 함미를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했을지 모른다.

필수장비 부족, 그나마 투입도 늦어
그나마 민간 어선이 함미를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28일 해군의 탐색·구조작업을 지원하던 어선 연성호는 어군 탐지기로 천안함 함미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해군에 알려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함미는 천안함이 침몰된 위치로부터 18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어선에 비해 최첨단 장비와 전문 인력을 갖추고도 사고 발생 사흘이 지나도록 천안함의 함미를 찾아내지 못한 해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서 “해군이 함미 하나 못찾고 어선이 찾았다니 정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가 막힌다”면서 “(김태영) 장관은 이러고도 초기 대응이 완벽했다고 대답할 수 있나”라고 질책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조직도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조직도

대형 크레인과 리프트 백 등을 갖춘 3000톤급 구조함인 광양함도 28일 오후 2시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29일에야 본격적인 실종자 탐색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잠수요원에게 필수적인 감압 챔버는 광양함에 30일까지 한 대밖에 없었다. 이 챔버 한 대로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고 5명이다. 함수와 함미에서 170여 명이 잠수작업을 하는 상태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특히 챔버를 갖춘 다른 구조함인 평택함은 수리를 받다가 31일 새벽에서야 지각 도착했다.

또한 천안함 선체를 인양하기 위한 해상 크레인의 투입도 늦었다. 해상 크레인은 29일 경남 거제에서 출발했다. 3척의 예인선이 크레인을 끌고 연안을 따라 빨리 항해한다 하더라도 닷새 이상이 걸린다. 민간인과 미군의 협조도 신속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견해도 있다. 민간 구조대는 천안함이 침몰한지 나흘째인 29일에서야 투입됐으며, 미 해군 구조함(샐버)은 29일 사고 해역에 도착해 탐색 및 구조활동에 동참했다. 이 구조함은 3월 18일에 끝난 한·미연합 야외기동연습인 독수리훈련에 참가했다.

해군은 또 사고 발생 이튿날인 27일에 이미 분향소와 영결식장 마련 등 실종자들의 장례절차를 준비, 비난을 사기도 했다. 국방부가 이날 오후 3시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현안보고에 따르면 해군본부와 제2함대 사령부가 각각 영결식과 분향소 설치를 준비하기로 돼 있다.

이에 따라 해군 등 군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이 군 안팎에서 대두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김태영 국방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여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현재 실종자 구조를 이유로 군 인사들에 대한 문책 조치를 겉으로는 반대하고 있지만 구조작업이 끝나는 대로 이 대통령에게 군 수뇌부에 대한 전면적인 문책인사를 건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 주요 기사
    • 많이 본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