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만의 귀향>전
“한류의 원조를 보고 싶습니까?”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500년만의 귀향’전은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그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학고재가 일본 소장가들로부터 사들인 컬렉션으로,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회화 30점을 선보인다. 그림은 중국의 고사(故事)를 소재로 한 고사도 10점과 말, 호랑이, 원숭이, 새 등 동물화 20점이다.
우리 문화재의 일본 반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사신 왕래, 문화 교류, 수집 활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뤄졌다. 왜구의 침범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을 통해 옮겨 가기도 했다. 특히 도쿠가와 바쿠후(막부)가 쇄국정책을 실시한 에도시대(17~18세기)에 12차례에 걸친 대규모 조선통신사의 방일은 조선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말 현재 외국에 있는 한국문화재는 18개국 10만7857점이며, 그 가운데 60%인 6만1000여 점이 일본에 있을 정도로 한국문화재에 대한 일본 수집가의 관심이 높았다.
이번에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은 15~16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방목도’(작자 미상, 견본수묵채색, 34×119.5㎝)다. 태조 이성계가 무신 출신이기 때문에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말을 중요하게 관리했다.
작자 미상의 ‘방목도’(위)와 윤두서의 ‘견마도’.
고려 불화의 영향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수십 마리 말 그림의 배경은 왕실의 목장이 있던 살곶이(지금의 마장동) 지역으로 보인다. 역시 작자 미상의 15~16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매사냥’(견본수묵채색, 55×32㎝)도 고려 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 초기 화풍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노송 아래 매사냥 전문가(응사)인 3명의 여진족이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서는 모습을 담았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견마도’(지본수묵, 21×49.5㎝)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마부가 채찍을 들고 말고삐를 잡아당기는데 말이 약간 버티는 동세를 취한 부채 그림이다. 문인화가 윤두서는 자신이 기르던 백마를 너무나 사랑해 식구들이 공손히 다루지 않으면 야단을 쳤고, 애마가 죽은 뒤 무덤을 별도로 썼다고 전해진다. 그런 만큼 그의 말 그림은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걸작으로 남아 있다.
통신사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현지에서 그렸거나 주문 생산한 것으로 보이는 화원 작품들로는 호랑이 그림이 많다. 어미호랑이와 세 마리의 새끼 호랑이가 폭포 아래 언덕 위에서 노는 모습을 담은 ‘까치호랑이’(17~18세기), 두 그루의 노송이 자라는 언덕 아래 암수 호랑이와 세 마리의 새끼 호랑이가 가족 나들이를 나선 ‘맹호가족도’(18~19세기), 역시 노송과 함께 꼬리를 치켜올리고 앞몸을 낮춘 채 돌아보는 호랑이를 그린 ‘송호도’(송암, 19세기) 등은 맹수의 위용이라기보다 천진한 모습이다.
한편 고사도는 중국 역사를 원전으로 하여 이상화된 세계나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고사도에 대한 일본 상류사회의 관심은 한·중·일 유교지식층의 사상, 미의식, 취미 등이 같은 뿌리라는 점을 보여 준다. 멋들어진 노송 세 그루가 자란 강변 언덕을 배경으로 한 문사와 각각 거문고 및 양산을 든 동자를 그린 ‘송파휴금도’(견본수묵, 53×25.3㎝), 죽림에 둘러싸인 저택의 가을 정취를 담은 ‘누각산수도’(저본수묵담채, 118.5×50.5㎝)가 16~17세기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세도가 김조순의 아들인 김유근이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단순한 시를 곁들인 산수도에다 권돈인이 시를 붙여서 꾸민 ‘소림단학도’는 당시 선비들의 풍류와 우정을 엿보게 한다. 4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