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의 대가’라는 평을 받는 이말년의 만화. |NHN
인터넷 조어 가운데 ‘병맛’이라는 말이 있다. 용법은 이런 식이다. “진짜 병맛이네” “병맛이지만 멋있어!” 그러나 의미는 확실히 와 닿지 않는다. 병맛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나오지만 대충 ‘병신 같은 맛’의 축약어라는 해석이 대세다. 돌이켜보면 병맛 이전에 ‘이뭐병’(이것은 무슨 병신 같은) 같은 축약어가 있었다.
‘병맛’은 일반적으로는 조롱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달려간 한 보수일간지 논설위원의 칼럼을 두고 누리꾼은 ‘병맛칼럼’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누리꾼이 ‘병맛’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종류의 텍스트들에는 일종의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기승전병’이다. 결론 대신 ‘병’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분야로 확장됐지만 ‘병맛’이라는 조어와 가장 많은 친화력을 보이는 텍스트는 인터넷 만화다.
‘병맛의 대가’ 소리를 듣고 있는 이말년의 만화를 보자. 웹툰 <본격윈도우폰만화>는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대신 모바일 윈도가 깔린 휴대전화를 홍보하기 위해 스폰서를 받아 만든 만화인 듯하다. ‘DivX편’의 홍보 콘셉트는 단순하다. “윈도폰을 사용하면 인코딩을 할 필요 없이 다운로드한 영화를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의 주인공은 생활지도 교사와 전교 꼴찌 학생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후 주인공들이 언덕에 나란히 앉아 그 장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생활지도 교사는 외친다. “그래, 그럼 저 석양을 향해 함께 달려갈까?” 만화는 지는 해를 배경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그림자를 보여 주면서 끝난다.
코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전개는 그저 황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개의 패러디가 숨어 있다. 첫 번째는 황당한 학교 선생들을 패러디한 환타CF 시리즈다.(뒤의 언덕 설정, 황당한 선생을 경험한 학생들이 언덕 등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장면) 두 번째는 ‘내일의 조’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투적인 엔딩 장면이다. 이런 코드들은 이미 패러디를 통해 다양한 버전으로 인터넷 문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이말년의 만화가 직접적인 인용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리꾼은 이말년 만화에 숨어 있는 이런 코드들을 찾아 낼 뿐만 아니라 이말년식 패러디에 착안한 놀이를 직접 창안하기도 한다.
야후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고 있는 이말년이나 조석 등은 비교적 제도권에 안착한 경우다. 사실 이런 기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힘든 19금급 언더그라운드 ‘병맛 만화’의 코드는 이미 특정 커뮤니티를 넘어 인터넷에서는 일반화돼 있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 ‘우왕ㅋ굳ㅋ’의 기원 역시 ‘병맛 만화’다. 평론계에서는 ‘병맛 만화’를 어떻게 볼까.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는 병맛 만화의 핵심 키워드는 ‘공명’이라고 말했다. 비록 형식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독자들은 그 속에서 취향이나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코드를 발견한다는 것. 또 하나의 특징은 이른바 폐인 또는 루저 문화다. 1980년대까지 대본소 만화를 지배하고 있던 코드는 비범한 인간들의 성공 스토리이지만 2000년 이후 청년문화의 특징인 루저 정서를 반영하는 만화가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아직 본격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나 비평은 없지만 특히 21세기 청년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진지하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