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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유럽합중국’으로 재탄생 

입력 2009.12.02 17:10

회원국 27개국 5억 인구 통합 정치공동체로 출범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와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왼쪽부터)이 지난 11월19일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건물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가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와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왼쪽부터)이 지난 11월19일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건물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가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새로운 헌법인 리스본 조약이 12월1일 발효됨에 따라 EU는 정치·경제적으로 통일된 ‘유럽합중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리스본조약에 따라 신설된 ‘EU 대통령’(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장관’(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이 지난 11월 선출됐으며, EU 집행위원회도 내년 1월 말까지 새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로써 EU는 회원국 27개국 5억 인구를 통합해 내부의 단결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치공동체로서의 위치를 굳히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새 얼굴들 둘러싼 ‘대표성 논란’
EU는 지난 11월19일 초대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62)를 선출하고,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53)을 초대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로 지명했다. EU는 이번 상임의장과 외교대표 선출로 이른바 ‘헨리 키신저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재직 시 유럽 통합 아이디어를 비아냥거리며 “유럽과 대화하려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느냐”는 말을 남겼다. 판롬파위는 상임의장으로 선출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첫 전화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다”고 화답했다.

판롬파위는 ‘카리스마형’이라기보다 ‘관리형’ 지도자, 실용적인 접근으로 합의에 이르는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일본의 시 ‘하이쿠’를 즐겨 짓는 그는 지난해 벨기에 총리로 선출돼 경제 위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언어 갈등이 극심한 벨기에 정국을 안정시켰다. 남작 작위를 받은 애슈턴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됐으며, ‘학습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판롬파위와 애슈턴 두 지도자가 유럽을 대표할 만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않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1월24일 사설에서 “이들의 이름이 발표됐을 때 유럽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최초의 반응은 ‘누구?’라는 질문이었다”고 꼬집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와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이들 지도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 비견할 만한 ‘스타’ 정치인이 EU를 대표해야 한다면서 초기 유력 후보였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낙마에 아쉬움을 표했다. 가디언은 “유럽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흐름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고 혹평했다.

유럽의회의 녹색당 공동의장인 다니엘 콩방디는 “EU 지도자들이 EU 기구를 약화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유약한 집행위원장에 이어 입에 맞는 상임의장, 두드러지지 않는 외교대표를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EU가 정치·경제적 통합을 구호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각국 지도부는 EU 대표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판롬파위 본인도 인선 협상 과정에서 상임의장직을 두 차례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벨기에의 현직 정부수반으로서 드러내놓고 이 자리를 노릴 수 없는 데다 상임의장 선출이 만장일치가 아닌 가중다수결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다는 해석이다.

EU 새 집행위원회 구성 본격화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왼쪽)와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11월19일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건물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에서 각각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로 선출된 뒤 웃고 있다.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왼쪽)와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11월19일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건물에서 열린 특별 정상회의에서 각각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로 선출된 뒤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EU 내에서는 내년 1월에 출범할 새 집행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일상적인 공동체 업무를 관장하고 각종 법안의 입안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 5년 연임에 성공한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위원장(포르투갈)과 부위원장을 겸하는 애슈턴 외교대표 지명자를 제외한 나머지 25개의 집행위원 자리를 놓고 요직을 차지하기 위한 회원국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영국이 외교장관 자리를 꿰찬 가운데 EU에서 목소리가 큰 프랑스와 독일은 핵심 집행위원 자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좋은 자리’라 평가되는 통상담당 집행위원 자리를 놓고서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가 경쟁하고 있다. 현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스웨덴도 영향력이 큰 집행위원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수 집행위원장은 지난 11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연설에서 “차기 집행위원단에 후보로 지명된 사람들의 전체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27명의 후보 가운데 9명이 여성으로, 전체 후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애슈턴에 이어 EU 조직을 이끌어갈 여성들의 활약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리스본 조약에 따라 새로워지는 EU
2년6개월 임기의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원국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맡던 순회의장을 대체한다. 외교대표는 기존의 외교정책 대표와 외교담당 집행위원의 기능을 통합, 외교정책 결정권을 갖게 된다. 집행위원회는 집행위원 수가 현재의 27명에서 2014년부터 18명으로 줄어든다. 의사결정 방식에서도 현행 만장일치제 대신 ‘회원국의 55%가 찬성하고 찬성국들의 인구가 EU 인구의 65% 이상이면 가결’되는 ‘이중다수결 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돼 2017년에 전면 실시된다. EU의 입법부인 유럽의회 선거는 내년 6월 현행 니스 조약에 따라 실시된다. 리스본 조약 정착에 필요한 과정이 완료되기까지 짧아도 1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최근 유엔에 EU의 지위를 바티칸이나 팔레스타인과 같은 ‘준국가’가 아닌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EU가 추진하고 있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적용될 경우 유엔총회와 산하 위원회에서 별도의 의석과 명패를 부여받게 된다. 또 투표권은 없지만 토론에 참여하고 결의안 공동 제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달라진 모습 못잖게 난제들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EU의 가장 시급한 사안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라면서 “이란 핵 프로그램 등 중동 평화정책을 이끌고, 미국 주도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치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더욱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내부 갈등 해결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EU 가입을 놓고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는 반대, 영국·스웨덴·동유럽 국가들은 찬성으로 갈라져 있다.

유럽통합 일지

1951년 서유럽 6개국,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설립
1958년 로마 조약, 유럽경제공동체(EEC) 출범
1990년 국경 통제를 폐지하는 셴겐협정 체결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유럽연합(EU) 설립
1999년 단일 화폐인 유로화 출범
2001년 ‘유럽장래문제협의회’ 구성 합의
2004년 동유럽 10개국 대거 가입(‘EU 빅뱅’)
2005년 EU 통합헌법, 프랑스·네덜란드 등 부결로 무산
2007년 EU 회원국 정상들, 리스본 조약 채택
2008년 아일랜드 리스본조약 국민투표 부결
2009년 아일랜드 리스본조약 가결, 폴란드·체코 비준(회원국 전원 비준)
2009년 12월 1일 리스본조약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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