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적인 성악 부르는 ‘잡리스’… 누구나 참여하는 캠페인 꿈꿔
노래하는 엄태호(왼쪽)·김우섭씨(오른쪽)와 기타리스트 최민수씨(뒤).
'우리 반 반장인 임영박 얘기를 할게요. 울 학교 신문부 땜에 반장이 되었죠. 반장되기 전부터 근신·정학·퇴학 14번이나 있었답니다. 1학년 때 떡볶이 돌리다 걸려 반장선거 못 나왔죠. BBK치킨이 지꺼라고 자랑하다가 치킨집이 망하니까 다른 애꺼라던. 뻥이 심한 영박 엄석대보다 더 나쁜 임영박 우리반 반장. 임영박 너 땜에 전학가고 싶다. 거짓말했다며 학생부에 끌려간 친구 책상 뺏지 말라 하다 맞아 죽은 친구. 영박이가 그랬죠. 우리반을 위해 어쩔 수 없댔죠. 나는 알아요. 임영박 친구 강부자 고소영 위해 그랬다는 걸.’
턱시도를 입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로 변장한 두 청년이 엄숙한 표정으로 ‘우리반 반장 임영박’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부르고 있다. 은근하게 울리는 선율은 영화 <미션>에 삽입된 엔리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이지만 가사는 누가 들어도 현 정부를 코믹하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화면 중간중간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의원, 체포된 BBK 김경준과 미네르바, 용산 참사 등의 자료 화면도 등장한다. UCC를 접한 누리꾼들은 배꼽을 잡으면서도 한 편으로 슬픈 감정에 휩싸인다. 발표 한 달 만에 10만 명의 누리꾼이 감상했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동영상 인기몰이 인터넷 유명인사
이 동영상의 주인공은 ‘잡리스’(Jobless). 세종대 음악과에서 성악을 전공한 만 서른셋 동갑내기 김우섭·엄태호씨 등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고급 예술의 대명사, 성악을 무기로 해 반전의 효과가 더 크다. 현재 사이버상에는 이들이 만든 또 다른 패러디곡 ‘내 나이 서른하고 네 살’ ‘비비디바비디부’ ‘신문과 국정홍보처 사이’ UCC도 인기리에 퍼지고 있다. 각각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꼬집고, 보수언론을 조롱하는 노래다.
“세상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수개월 전 한 술자리에서 엄태호씨, 그리고 기타와 코러스를 맡고 있는 최민수씨에게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수락해 2월 첫곡을 발표했죠.”(김우섭)
그룹 이름은 잡리스지만, 이들 중 실제 ‘백수’는 아무도 없다. 김우섭씨는 결혼식 축하연주를 공급하는 회사, 엄태호씨는 온라인 결혼정보회사, 그리고 최민수씨는 편집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엄연한’ 사장님들이다. 영상·분장·홍보를 맡고 있는 이도 직장이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그룹 이름을 잡리스라고 지었을까.
“대학을 졸업한 후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하다 2002년 이탈리아로 떠났어요. 국립 베르디음악원과 밀라노시립음악원을 다녔죠. 하지만 2006년 귀국 후 제 전공을 살려 취직할 곳은 없었어요. 지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거예요. 이것이 제가 대학원(세종대 예술경영대학원) 진학과 동시에 온라인 결혼정보회사를 차린 배경이자 우리가 그룹 이름을 잡리스로 정한 이유예요.”(엄태호)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잡리스의 ‘우리반 반장 임영박’ UCC(왼쪽)와 5월 1일 노동절 행사에서 노래하는 모습.
사정은 김우섭씨나 최민수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씨도 6개월간 실업의 고통을 경험했고 대학원(성균관대 공연예술학과)에 진학했다. 또 고등학생 시절부터 록밴드 로커와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최씨 역시 한동안 홍대 부근 클럽에서 ‘펄밴드’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밥벌이를 위해 음악 인생을 접어야 했다. 세 사람 모두 회사를 설립하기 전까진 편의점, 패밀리레스토랑, 커피숍 등지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실업과 비정규직 생활의 경험은 그들의 노래 ‘내 나이 서른하고 네 살’과 ‘비비디바비디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노래가 유쾌하면서도 아픈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한민국 국민의 비극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서른하고 네 살. 왜 아직도 용돈 타 쓰나. 그건 내가 실업자기 때문. 어떡하죠. 구해줘 임영박. 300만 개 일자리 만든댔죠. 취직 안돼 대학원 갔죠. 학자금 대출로 빚쟁이죠‘(‘내 나이 서른하고 네 살’ 중)
‘눈높이를 낮춰 비정규직 택했네. 취업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편의점 알바 시급 4000원. 월급으로 치면 40만 원. 그나마 야간근무 땜에 100만 원에 가까워요’(‘비비디바비디부’ 중)
5월 11일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 주최한 ‘조종동 따져보기 UCC 공모전’에 ‘신문과 국정홍보처 사이’를 출품, 버금상(2등)을 수상했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를 개사한 노래다. ‘구독률 1, 2, 3위의 신문답게 자전거 뿌리고 상품권도 돌리시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며 방송국도 경영하겠대. (여론) 독점한대. 비판과 감시의 기능 국민의 알권리.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언론의 다양성. 이젠 국민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등의 가사로 구성돼 있다.
명성 높아지면서 초정공연 잇따라
명성이 높아지면서 공연 초청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 4일 국제반전행동 행사, 5월 1일 세계노동절 맞이 범국민대회 등 주로 집회현장과 대학축제에서 그들을 부르고 있다.
촛불 시위 가담자 구속,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등 살벌한 공안정국인지라 이들의 행보에 염려하는 시선을 보내는 누리꾼도 많다. “얼굴 가리고 활동하라”는 사람도 적잖다. 혹자는 “이런 수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잡리스는 활동을 멈출 생각도, 수위를 조절할 마음도 없다. 자신들의 노래로 마음이 후련해지고 통쾌해하는 이들이 있는 한 노래를 계속한다는 게 이들의 다짐이다.
“우리의 노래를 들으면 다들 무척 시원하고 통쾌하대요. 가려운 데 긁어주는 느낌이래요. 그렇게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몸을 사릴 수 있겠어요?”(엄태우)
김우섭씨는 “예술가의 활동은 결국 시대와 사회를 담는 것”이라며 “만약 우리의 노래가 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꼬투리를 잡는다면 그건 그들이 촌스럽고 유치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잡리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그룹이다. 지금의 멤버뿐 아니라 누구나 동참해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일종의 캠페인으로 거듭나는 게 잡리스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잡리스 앞에 ‘꿈꾸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얼마 전 한 고등학생이 일제고사로 해직된 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창작해 보낸 후 이 노래를 잡리스가 불러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어요. 우리는 그 학생에게 ‘당신이 이 노래를 선생님과 함께 부르면 좋겠다’고 역제안을 했죠. 학생이 수락하면 우리는 그 노래에 코러스로 참여할 거예요. 아직까지 학생의 답변은 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잡리스는 그런 거예요. 누구나 참여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회를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 노래하는 것이죠.”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