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의미 있는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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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의미 있는 떡국’

입력 2009.02.10 00:00

식습관을 바꾸자

흰색 떡 음식 먹으며 ‘순수와 장수’ 기원

한 가족이 한복을 차려입고 떡국을 먹고 있다.

한 가족이 한복을 차려입고 떡국을 먹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백석의 ‘여우난골’ 중에서)

여우난골은 시인 백석(白石)의 고향마을이다. 이 시에서는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정겹게 어울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명절음식들이 이어진다.

설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세배와 덕담, 세뱃돈을 주고받는 즐거움, 차례지내고 나누는 많은 이야기… 우리 설날의 잔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0시간이 넘게 눈길을 헤치며 달려간 고향, IMF 외환위기보다 더 파괴적이라는 글로벌 외환위기였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설빔을 나누는 가족의 정이 있어 좋은 설날이었다. 그렇지만 향긋한 설 명절 음식 맛과 고소한 냄새를 빠뜨리고 명절을 회상할 수 있을까. 돌아선 지 얼마 되지 않아도 늘 아득한 고향의 향수에는 쫄깃한 떡국맛도 여운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한다. 시인 백석이 수많은 명절음식을 나열하며 설날 풍경과 향취를 되뇌는 것도 그런 향수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를 한 살 먹는 ‘첨세병’
설을 쇠는 것을 ‘과세(過歲)’라고 한다.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은 첨세병이라고 불렀다. 나이를 먹는 떡이라는 뜻이다. 어른이 어린아이들의 나이를 알고 싶을 때면 종종 “떡국 몇 그릇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연로한 어른은 “나는 떡국 먹고 싶지 않다.

늙는 게 싫어”라는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누구도 진담으로 듣지 않고 떡국 먹기를 권한다.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 설날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다. 이는 누구나 떡국을 즐기며 또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설날에 먹는 떡국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떡국은 밝음과 깨끗함, 그리고 처음을 상징한다.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부활신생를 뜻하는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떡국의 원료인 가래떡이 희고 긴 것은 순수와 장수를 의미한다.

흰떡의 역사는 깊다. 한국의 떡은 20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청동기와 철기 초기 시대에 시루는 상용 음식 도구였다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신라시대 때 유리와 탈해가 왕위 승계를 사양하자 떡으로 이 자국을 내서(이가 더 많은 사람이 지혜롭다고 믿음) 왕을 뽑았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또 가래떡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벼농사를 짓고 시루와 확돌을 사용하던 기원전 4~5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흰떡은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按盤) 위에 놓고 메로 쳐 몸이 매끄럽고 치밀해지도록 한 다음 가래떡을 만든다.

방앗간에서 무지개 가래떡을 뽑느라 분주하다.

방앗간에서 무지개 가래떡을 뽑느라 분주하다. <노재덕 기자>

이 떡을 백병거모(白餠擧摸)라고 했다. 옛날에 떡국의 떡은 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찐 후 떡메로 쳐서 차지게 한다. 그다음, 한 덩어리씩 떼어 손으로 비벼 굵고 긴 양초가락처럼 만든 가래떡을 썰어놓는다. 설날에는 둥글게 떡을 써는 게 풍습이다.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상징하기에 어슷하게 썰지 않은 것이다. 가래떡은 길이가 원하는 대로 늘어나기에 수명도 늘어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옛날에는 떡국 국물을 꿩고기로 우려내었다.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워서 닭고기로 육수를 내기도 했다. 이런 연유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왔다.

떡국을 끓일 때는 고기장국을 미리 끓여 두는데 국물이 맛있게 우러나는 양지머리를 고아서 덩어리는 편육으로 이용한다. 양념한 장국을 끓이다가 준비한 흰떡을 냉수에 씻어서 넣고 한참 끓여 떡이 떠오르면 그릇에 담아서 웃기를 얹는다. 웃기는 따로 살코기를 다져놓은 것이고 황백지단을 쓴다. 때로는 살코기와 파를 꼬치에 꿰어 만든 산적을 한두 꽂이 얹기도 한다. 개성지역에서는 누에고치 모양의 조랭이 떡국을 끓이며 충청지역에서는 생떡국을 끓인다. 멥쌀가루로 흰떡을 만들어 참기름을 바르면서 나무칼로 썰어 조랭이 떡을 만든다.

개성 조랭이 떡국 ‘망국의 한’ 담아
개성의 특식인 조랭이 떡국의 유래는 조롱에서 왔다. 조롱이란 예전에 어린아이들의 주머니 끈이나 옷끈에 맥막이로 차는 것이다. 나쁜 액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개성에서 정초의 뜻을 기리기 위해 깨끗한 흰빛의 떡을 누에고치 모양을 본떠 떡국을 끓인다. 이는 누에고치의 길(吉)함을 뜻한다. 또 조랭이 떡국은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수도인 개성지방에서 사무친 원한을 풀자고 가래떡 끝을 비비 틀어서 만들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일본과 중국에도 설 명절 음식이 있다. 일본의 명절음식은 5법(法), 5미(味), 5색(色)에 담긴 오세치다. ‘오세치 요리’란 정월에 먹는 전통요리로 보통 5단의 찬합에 우엉, 토란, 밤, 새우, 다카노 두부(두부를 찬바람에 말린 것) 등 다양한 요리를 저장해놓고 정월 사흘 동안 먹는다. 오세치 요리의 재료에는 각각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검정 콩은 악귀를 쫓는 의미다. 황금색 밤은 부자가 되라는 뜻이고, 긴 수염 달린 새우는 장수를 의미한다. 숫자가 많은 청어알은 자손의 번영을 뜻한다. 구멍이 난 연근은 그 구멍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얻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에는 녠가오(설떡)와 자오츠(수제 만두)가 있다. 중국에선 새해 밥상에 행운의 동전이 든 만두를 올린다. 또 진시황이 반했다는 화려한 꽃 속에 파묻힌 하얀 생선, ‘국화어’를 맛보고 ‘포춘 쿠키’를 통해 한해의 운수도 점쳐 본다. 자오츠는 덩어리 화폐이 위안바오(元寶)와 모양이 같다고 한다. 송나라 때는 지폐를 자오츠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재운을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