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행보’에 대한 혹평과 호평
<박민규 기자>
해를 넘겨가며 지속된 ‘입법전쟁’은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대국민 설득 및 홍보를 생략한 채 공허한 경제논리만 내세워 소위 ‘MB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후과다. 일찍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야당과 여론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였다. 세종대왕이 조야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민정부 당시 OECD 가입을 자축하다가 IMF 환란을 초래한 속빈 강정의 ‘외화내빈(外華內貧)’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다.
국정이 후대의 사필(史筆)을 두려워하며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거화취실(去華就實)’로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거화취실’의 통치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MB법안의 강행 처리를 독려할 만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내세우는 실용주의 경제가 ‘거화취실’의 통치철학에 입각해 있는 것도 아니고, MB법안이 초미지급(焦眉之急)인 경제 위기 극복 방안과 직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눈치만 본다” vs “대화 물꼬 텃다”
실제로 미디어 관련법은 많은 국민의 눈에 ‘재벌언론 대 민주언론’의 대결로 비춰졌다. 여타 쟁점법안 역시 ‘소수재벌 대 다수서민’의 충돌로 비춰진 게 사실이다. 고래로 ‘귀족 대 서민’의 대결 양상으로 전개된 싸움에서 귀족 편으로 분류된 측이 승리한 적은 없다. 삼국시대 당시 원소가 조조에게 패퇴하고, 초한전 당시 항우가 유방에게 참패한 게 그 대표적 실례다.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고 대국민 설득 작업을 생략한 채 MB법안을 밀어붙인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의 무무함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쟁점법안에 대한 여야 간의 이견 폭이 워낙 커 2월 임시국회에서도 협의 내지 합의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내부 전열을 가다듬어 대국민 설득 및 홍보에 성공할 경우 그 결과를 예단키가 쉽지 않다. ‘거화취실’에 입각한 강행 처리의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 김형오 국회의장이 다시 ‘직권상정 불가’를 천명할지 여부다. 현재 여권 내에서는 김 의장의 ‘중립행보’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려 있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시종 여야의 눈치를 살피며 수서양단(首鼠兩端)의 행보를 보여주었다는 혹평과 여야 간 합의 타결의 물꼬를 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행보를 보여주었다는 호평이 그것이다.
‘수서양단’이라는 표현은 <사기>의 ‘위기후열전’에 나온다. 이에 따르면, 한무제 때 태황태후의 당질(堂姪)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 )과 태후의 동모제(同母弟)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 )은 오랫동안 경쟁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태황태후 사후 전분이 승상이 되자 사람들이 모두 두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전분에게 갔다. 오직 장군 관부(灌夫)만 두영을 변함없이 추종했다. 관부는 사람됨이 강직했으나 술만 마시면 세력 있는 자를 능욕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무제 원광 3년(기원전 132)의 여름날, 전분이 연왕(燕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자 조정관원들이 대거 몰려가 이를 축하했다. 두영과 관영도 하객 행렬에 동참했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전분이 일어나 일일이 술을 권하자 빈객들이 모두 피석(避席: 자리에서 옆으로 비껴나 허리를 굽힘)했다. 잠시 후 두영이 일어나 술을 권하자 그와 친교가 있는 사람들만 피석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슬석(膝席: 무릎의 반을 앉은 자리에 걸침)했다. 당시는 무릎을 꿇은 채 술을 마신 까닭에 ‘슬석’은 하대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관부가 일어나 술을 따르다가 전분 앞에 이르자 전분이 ‘슬석’한 채 오만하게 말했다.
“이미 많이 마셨으니 조금만 따르시오.”
화가 난 관부가 빗대어 말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 다 드시오.”
전분이 이를 무시하자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관부가 취기를 빌려 말을 함부로 했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빈객들이 핑계를 대고 하나둘 자리를 뜨자 화가 난 전분이 이내 하령하여 관부를 하옥케 한 뒤 한무제에게 이같이 무고했다.
“관부의 일족이 전횡하는 까닭에 해당 지역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에 관부와 그의 일족이 모두 기시죄(棄市罪)의 판결을 받게 되었다. 두영이 주연 자리에서 빚어진 작은 일로 형률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선처를 호소하자 한무제가 조회에 참석한 신하들에게 이를 물었다. 우직한 주작도위(主爵徒尉: 수도청장) 급암(汲 )은 두영이 옳다고 했으나 어사대부(御史大夫: 감사원장) 한안국(韓安國)은 이같이 말했다.
“관부는 천하에 보기 드문 용사로 커다란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이번에 비록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불사지죄(不赦之罪)를 범한 것은 아닙니다. 두영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승상의 말도 잘못이 없습니다. 관부는 확실히 백성들을 억압하고, 집안에 수만금을 쌓아 두었습니다. 황상이 친히 재결토록 하십시오.”
퇴조 후 전분이 한안국을 불러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 노기 띤 어조로 힐난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주선으로 열린 1월 5일 원내대표 간담회에서 홍준표 한나라당·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보수에서 약간 좌측’ 정치적 자평
“그대는 왜 자신의 의견을 명백히 드러내지 않고 노독옹(老禿翁: 늙고 벼슬 없는 자, 두영을 지칭)을 두려워하며 ‘수서양단’의 모습을 보인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모두 죽일 것이오.”
당시 황실의 관습에 따라 한무제가 태후에게 밥상을 올리자 태후가 밥상을 물리치며 탄식했다.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내 동생을 모욕하고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는 틀림없이 그를 어육(魚肉)으로 만들겠구나.”
한무제가 부득불 관부와 그 일족을 죽였다. 여기서 ‘수서양단’은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지의불결(遲疑不決) 내지 첨전고후(瞻前顧後: 좌고우면)와 동일한 뜻으로 전용되었다.
사실 김 의장의 행보는 한안국과 사뭇 닮아 있다. 사태가 심각하게 치닫고 있는데도 의장실을 비워둔 채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가 기자회견을 통해 ‘중대결단’ 운운하며 엄포를 놓은 것은 ‘수서양단’의 오해를 살 만했다. 당시 많은 국민은 ‘중대결단’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를 넘기도록 볼썽사나운 강제 해산의 시늉만 있었을 뿐이다. ‘수서양단’의 혹평이 나오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김 의장 스스로 자신의 성향을 ‘보수에서 약간 좌측’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당내에서 지나치게 개혁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진보 성향을 보이는 합리주의자로 통하고 있다. 그는 최근 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은 바 있다. 이는 더 이상 대화는 없다며 누차 의장의 직권상정을 촉구한 홍준표 원내대표의 강경 행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화이부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자는 이같이 풀이한 바 있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화이부동’은 조화를 이루되 편당(偏黨)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하고, ‘동이불화’는 편당을 지으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의 화(和)는 주선화해(周旋和諧: 두루 교제하며 조화를 이룸)를 추구하는 군자의 공적인 행보, 동(同)은 비당영사(比黨營私: 무리를 형성해 사리를 도모함)를 추구하는 소인의 사적인 행보를 의미한다.
‘차기 노린 계산된 행보’ 일부 의구심
그러나 문제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리를 도모하는 소인들도 겉으로는 ‘공리(公利)’와 ‘공의(公義)’를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김 의장의 중립행보를 ‘수서양단’으로 혹평하는 사람들이 그를 두고 ‘화이부동’이 아닌 ‘동이불화’의 위군자(僞君子)로 폄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의장은 과연 ‘위군자’에 불과한 것일까.
그간 김 의장이 보여준 일련의 중립행보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 그는 촛불민심이 거리를 메울 당시 초선의원 워크숍에 중진 자격으로 참석해 “촛불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원 구성 및 추경안 처리 문제로 정국이 크게 경색되었을 때도 한나라당 내의 강경 기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직권상정을 거부함으로써 마침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당시 일부 강경파 의원이 강력히 성토하고 나서자 그는 이같이 대꾸했다.
“한나라당은 결코 수적 우위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는 출석 의원 283명 가운데 263명의 찬성을 얻어 역대 의장선거 사상 최다 득표로 선출된 바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을 하늘같이 두려워하며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한 국회의 권능과 권위를 회복하는 데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중립행보’는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상생의 정치’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나름대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그가 차기를 노리고 고도로 계산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이런 추론이 맞는다면 그는 큰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중립행보는 기본적으로 여야 간의 극단적인 대립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은 까닭에 그것 자체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권 내 입지를 크게 좁혀 장차 부메랑으로 돌아올 소지가 크다.
만일 그가 큰 뜻을 품고 있다면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직권상정’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설령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지라도 크게 보면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할거의 당쟁 구도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인물이 요구되게 마련이다. 김 의장은 <난중일기>에 나오는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볼 일이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indj@hanmail.net
| 신동준 | 21세기정경연구소장. <조선일보> <한겨레>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등의 저·역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