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의 문제점, 과당경쟁으로 방송의 저질화·상업화 부추겨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2008년 12월 31일 저녁 제야의 종 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정부의 언론법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새해 추위는 몰려오는데 분노와 불만의 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여야는 서로 손가락질하고 언론인은 마이크와 펜 대신 피켓을 들었다. 여야의 원내대표 회동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쟁점이 되고 있는 7개 법안 가운데 방송법 처리에 대한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 모두 이 법안을 향후 정치적 존폐가 걸린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장기집권 도모하기 위한 기획입법”
민주당은 “대기업 신문사 외국 자본의 지상파,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 지분 소유 허용의 목적은 보수세력에 유리한 언론 환경 조성”이라며 “권언유착을 통한 장기 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기획 입법”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매체 간 융합’이라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기존 사업자와의 경쟁 관계를 형성해 관련 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송사 등의 언론 총파업 계기를 제공한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은 모두 7개다. ▲방송법 ▲신문법 ▲정보통신망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언론중재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 특별법이다. 이 가운데 가장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방송법이다.
방송법의 경우, 한나라당은 이번에 마련한 방송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과 신문사, 외국 자본의 방송 사업 참여를 허용했다. 신문이나 대기업의 지분 소유는 지상파에서는 20%, 종합편성 채널에서는 30%까지 가능하다. 외국 자본은 현행대로 지상파에 진입할 수 없지만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에서는 20% 지분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방송의 1인 소유 제한도 현재 30%에서 49%로 대폭 완화한다고 한다.
알려진 바로는 대기업의 방송 참여 자산한도를 당초 3조 원 이하에서 다시 10조 원 이하로 개정했다가 아예 그 제한 자체를 없앴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될 만한 조항의 개정 과정에서 문광위원들조차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개정 없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방송법이 개정될 경우 방송 환경은 어떻게 바뀔까.
첫째, 방송법이 현재처럼 통과된다면 신문재벌, 대기업은 공중파 방송을 갖게 된다. 중앙일보와 삼성이 결합하거나 동아일보와 현대그룹 등이 손잡고 새로운 재벌방송으로 MBC나 KBS2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재벌천국, 강자, 부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준다.
둘째, 이를 위해 MBC, KBS2는 SBS처럼 사영화될 것이다. 현재의 ‘다공영 1민영체제’에서 ‘1공영 다민영체제’로 전환을 의미한다. MBC의 대대적인 구조 개편과 변화를 예고하게 된다. 24시간 뉴스 전문채널 YTN도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내용적으로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손잡는 대기업은 정치 성향이 비슷한 정당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할 것이며 재벌에 대한 비판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자칫 야당이 우려하는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화를 위한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소수의 목소리도 존중받는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는 사라지고 힘있는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 또 이에 대한 비판, 감시체계는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공영방송 KBS의 관영화 심화 우려
넷째, 과다 경쟁에 따른 방송의 저질화와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사회 주요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공영방송체제가 무너지고 민영방송의 난립은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한 저질화·상업화·오락화를 부추길 것이고 다시 공영방송화 논의가 나오게 될 것이다.
다섯째, 공영방송 KBS의 관영화가 심화될 것이다. MBC와 경쟁관계에 있던 대표적 공영방송 KBS1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사라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상대적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과 정치권의 감시·개입 등에 취약해진 공영방송은 급속하게 관영방송화될 것이다.
여섯째, 신문·방송 겸영에 대해 단계적·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던 한나라당의 당초 입장이 대폭 바뀐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낙하산 인사들로 각 방송사 사장들을 채웠고 이것을 이제 법제화하는 과정만 남은 셈이니만큼 앞으로는 방송과 시민단체의 대립과 갈등이 주요 사회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집권당은 신문재벌과 대기업에 공중파 방송까지 허용하면서 당초의 예상과는 상당히 벗어난 법안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공청회와 언론현업계, 언론학계 등과 변변한 논의조차 없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신문재벌이나 대기업에 방송을 허용하는 데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2008년 12월 18일 한길리서치 조사 결과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과 방송뉴스 허용에 대해 반대 62.4%, 찬성 21.6%로 반대 의견이 3배나 많았다. 또 2008년 12월 27일 문화방송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서도 한나라당의 신문·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응답자의 61.1%가 ‘재벌과 권력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응답했고, ‘미디어 산업을 위해 찬성한다’는 한나라당 주장에는 25.3%만 동의했다.
향후 펼쳐질 방송미디어 환경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일방적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면서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민 다수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했으며 방송현업인들조차 반대하고 있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법과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참여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이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 이명박 정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창룡<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