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칙이 사태 악화, 어리석은 모방 정책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2일 국무회의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우철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미주교포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언급해 빈축을 샀다. 그는 이에 앞선 9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이라도 사고 싶다”고 언급한 데 이어 10월의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에서도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고 말했다. 거의 한 달 간격으로 국민을 향해 사실상 주식을 사라고 종용하고 나선 셈이다.
위기에 처한 시장을 되살리고자 하는 그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이런 발언이 여러모로 적절치 못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여론이 부정적인데도 거듭 이런 발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략 후보 시절에 내세운 소위 ‘MB노믹스’의 주박(呪縛)에 걸려든 효과로 보인다.
이런 추론이 맞는다면 그는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행보를 배울 필요가 있다. 사르코지 역시 지난해 초에 치른 프랑스 대선에서 소위 ‘7??공약’과 유사한 공약을 내걸어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문득 태도를 바꿔 월가의 헤지펀드에 휘둘리는 미국의 금융체제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루아얄이 내세운 전통적인 ‘관치 금융’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는 금융 위기 이후 사회당의 정책 노선이 결국 옳았던 게 아니냐는 여론의 변화를 적극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방만한 차입 경영 등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관치금융’을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금융 개방 정책 고수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막대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민영은행의 국유화 조치까지 취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재빠른 변신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금융 위기를 예언해 성가를 높인 바 있는 일보 게이오대의 가네코 마사루 교수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금융 위기 대책은 현안의 초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가 미봉책으로 경제 위기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이에 부화뇌동해 외자 유치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금융 개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해당 부처들이 손발도 맞추지 못한 채 고식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모습은 IMF 외환위기 당시를 방불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고식양간(姑息養奸)’의 우를 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당제국의 유종원은 <삼계(三戒)>에서 영주(永州)에 사는 어리석은 인물의 모습을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자신이 쥐띠 해에 태어난 것을 이유로 쥐를 잡는 것을 매우 꺼린 자가 이내 고양이를 기르지 않게 되자 인근의 쥐들이 모두 그의 집으로 몰려왔다. 쥐들이 밤낮으로 퉁탕거리며 시끄럽게 나돌아 다녀도 이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새 주인이 와서 이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전의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고식양간’하여 쥐들이 이처럼 날뛰도록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후 고양이를 여러 마리 들여와 쥐를 소탕했다. 이후 ‘고식양간’은 무원칙한 자세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자를 비유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 “지금은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고 과거와 달리 기초가 튼튼하다”는 식으로 만연히 대처할 경우 ‘고식양간’의 화를 자초할 공산이 크다. 이는 그가 취임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여러 기록을 갈아치운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역대 최다 득표차로 당선했으나 취임 100여 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후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경제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고식양간’의 고사에 나오듯이 종횡으로 오가는 쥐를 기필코 때려잡겠다는 남다른 각오와 실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시정부의 신자유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MB노믹스’부터 크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이를 고집할 경우 <장자> ‘천운’ 편에 나오는 ‘동시효빈(東施效嚬)’의 우를 범할 공산이 크다.
미국 처지와 다른 만큼 대처 달라야
춘추시대 월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가슴 병을 앓은 그녀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손으로 가슴을 지긋이 누른 채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으로 거리를 오갔다. 그 모습이 마치 연약한 버드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는 듯해 모든 사람이 그녀의 찡그리는 모습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같은 마을에 동시(東施)라는 추녀가 살고 있었다. 서시의 이런 모습을 본 그녀는 자신도 그렇게 하면 아름답게 보일 것으로 생각해 이내 가슴을 문지르며 미간을 찡그린 채 거리를 쏘다녔다. 그러자 마을의 부자들은 그녀의 모습만 보이면 즉시 문을 걸어 잠근 채 문 밖 출입을 삼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즉시 처자식의 손을 이끌고 마을을 떠나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 고사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전혀 헤아리지 못한 채 무턱대고 남을 좇아 행동하는 어리석은 자를 비유한 것이다. <장자>는 그 배경을 두고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동시는 서시의 찡그린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 알았지 그 아름다운 까닭을 몰랐다.”
이론상 세계통화인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의 현재 위기는 서시의 가슴 병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단 하나도 보유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는 동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처지가 다른 만큼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IMF 사태 당시 우리가 취한 대응 방식이 좋은 실례다.
12월 4일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생활고를 걱정하며 울먹이는 할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IMF 외환위기는 ‘관치금융’으로 상징되는 아시아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금융공황’의 성격이 짙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사실 당시 IMF가 강요한 40%의 고금리와 긴축 재정, 가혹한 구조조정, 완전한 시장 개방을 통한 옥석구분(玉石俱焚)의 헐값 매각 등 처방전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는 월가의 헤지펀드를 ‘날강도’라고 비난하며 IMF의 처방과 정반대로 저금리와 대대적인 경기 부양, 외환 통제를 실시하여 경제 위기를 벗어났다. 이에 반해 김대중 정부는 IMF의 처방을 곧이 듣고 아무런 규제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국내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한동안 세간을 시끄럽게 만든 론스타 사태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IMF 사태 이전만 해도 혈액이 제대로 돌지 않는 빈혈환자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후 속으로 골병이 든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이번 사태가 빚어지기 전까지 일반 은행의 해외 투자자본의 비율이 70%를 상회한 사실이 그 증거다. 이는 구한말 당시 일본 화폐의 통용을 조건으로 내걸고 일본 차관을 무차별로 끌어다 쓴 결과 조선의 시장을 일본 상인에게 고스란히 내준 것에 비유할 만하다.
“나도 경제를 좀 안다” 태도 버려야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가네코가 지적한 것처럼 시대착오적인 외자 유치를 통한 고속성장을 고집하는 ‘동시효빈’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미 FTA의 조속한 발효를 통한 ‘MB노믹스’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국민 건강과 직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졸속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대규모 촛불집회를 촉발한 것이 실례다. 당시 그는 속히 결단하여 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해야 했음에도 두 달 넘게 방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린 결정적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위기 상황에서 최고통치권자가 결단하지 못하면 나라는 결딴날 수밖에 없다. 일찍이 춘추시대 최초로 패업을 이룬 관중은 제환공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충언한 바 있다.
“군주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우(優·끊고 맺음이 없음)와 불민(不敏·어리석고 둔함)입니다. ‘우’는 망중(亡衆·백성을 잃음), ‘불민’은 불급사(不及事·결정적인 시기에 일을 성사시키지 못함)를 뜻합니다.”
‘광우병 파동’ 당시 이 대통령이 청와대의 언덕 위에 올라가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은 것은 ‘우’, “먹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은 ‘불민’의 극치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는 원자재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고환율을 유도하다가 문득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소진하고, 주가를 억지로 떠받치기 위해 국민연금 등을 무리하게 동원해 해외 투기자본만 살찌운 바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지금은 수술보다 통원치료가 필요한 때다”라며 만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의 ‘우’와 ‘불민’에서 나온 것이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국이 분초를 다투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화급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해괴한 상황을 보고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심기일전의 자세로 임할 수만 있다면 그간의 실수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도 경제를 좀 안다”는 식의 선무당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일찍이 당태종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이같이 갈파한 바 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많은 고난을 겪은 까닭에 천하사를 모두 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지금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 곳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성군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는 당태종조차 적 편에 서 있었던 위징(魏徵)을 과감히 발탁해 수시로 조언을 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소영 인사’에 대한 비난은 ‘코드인사’로 실패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선무당의 자세를 버리고 천하의 기재(奇才)를 과감히 발탁해 난국을 타개하는 정공법을 구사해야 한다.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을 맞아 그간의 실수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in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