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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기호 맞춘 특화농산물

입력 2008.12.16 00:00

식습관을 바꾸자

‘우박사과’ ‘그림사과’ ‘노란색 당근’ ‘오색 컬러포도’ 등 호응 높아

일본 아오모리(靑森) 현은 사과 산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 명성을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곡절과 사연이 있다.

1991년 큰 태풍으로 수확을 앞둔 사과 90%가 낙과하는 큰 피해를 보게 됐다. 하지만 한 농부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소량의 수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손실을 보지 않았다. 창조적 대응의 결과였다. ‘떨어지지 않은 사과’에 대학 입시의 ‘합격’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이 사과를 먹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게 지금까지 아오모리 사과가 명성을 얻는 기초가 됐다.

‘합격’ 글자 새긴 대학입시용 사과

세계 최초로 쌈배추를 개발한 박동복제일종묘농산 대표가 농작물을 살피고 있다.

세계 최초로 쌈배추를 개발한 박동복제일종묘농산 대표가 농작물을 살피고 있다. <경향신문>

1993년에는 냉해로 상품의 질이 문제가 됐다. 사과나무 생장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조량 때문에 사과 크기가 매우 작았다. 일본인은 큰 사과를 선호한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는 미국 수출이다. 피크닉을 좋아하는 미국에서는 ‘작은 도시락’에 들어가는 사과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조량이 부족했던 때 얻은 교훈으로 창안해낸 게 ‘은박지 농법’이다. 사과나무가 익어갈 무렵 창공에서 내려다본 아오모리 현 사과재배단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온 천지가 은백색으로 빛난다. 사과 출하기가 되면 사과나무 밑에 은박지를 깐다. 태양 빛을 반사시켜서 사과나무의 생장에 필요한 일조량을 확보할 뿐 아니라 균일한 사과의 착색·당도·크기·모양·맛·향기를 얻기 위한 조치였다.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만든 창조적 대응의 사례다. 물론 일본 아오모리 현에만 이런 사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고랭지 사과 산지인 경북 봉화에 우박이 내렸다. 물론 사과도 우박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사실상 판로가 막힐 위기에 처했다. 봉화군은 이들 사과에 ‘우박사과’ ‘하늘이 내린 보조개 사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 소비자들이 아오모리 합격 사과를 샀던 것처럼 대구·경북 소비자들이 봉화 과수 재배 농가를 도왔다. 급기야 최근에 대만에 ‘보조개 사과’ 2500 상자를 선적하는 계가를 올렸다. 작명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낸 창의적 사고 덕분이다.

충주에는 ‘대학 사과’ 거창에는 ‘그림 사과’가 주가를 올리고 있다. ‘대학 사과’는 사과가 자랄 때 네모난 아크릴 상자를 씌워 사각모 모양으로 만든 뒤 수확기에 ‘합격’이라는 글자를 새겨 ‘입시선물용 사과’를 만들었다. ‘그림 사과’는 사과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선물 문화가 활발하지 않던 과거 젊은이들 사이에 은밀히 주고받던 사랑의 선물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상품화한 것이다. 채 영글지 않은 사과에 ‘사랑’ ‘Love’ 같은 단어를 적어두면 사과가 익어가면서 글자가 전혀 다른 색깔로 드러난다. 상품의 가치를 대학입시라는 이벤트, 사랑의 선물 등과 연결시킨 것이다. 영천에서 과수원을 운영했던 박환석(여·63)씨는 “어린 시절 사과에 색을 칠하거나 글씨를 쓰는 놀이를 하곤 했다”면서 “그 놀이가 새로운 상품의 아이디어가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색깔을 매개로 해서 나온 창의적 발상 역시 적지 않다. ‘노란색 당근’ ‘오색 컬러 포도’ 등은 전형적인 컬러 배스(Color Bath) 효과를 이용한 상품이다. 노란색 당근은 경기 화성의 황유섭씨가 종자교배로 얻어낸 ‘건강성 채소’다. 빨간색 당근이라는 고정관념을 파괴한 노란색 당근은 그 특이성 때문에 소비자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주황색 당근이 일반적이지만 흰색·자주색·보라색·검은색 당근도 있다. 황유섭씨는 흰색과 주황색 당근의 종자교배를 거쳐 노란색 당근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노란색 당근은 주황색 당근보다 커큐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커큐민은 뇌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 어린이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추와 순무 이종교배 ‘베타 쌈배추’
오색 컬러 포도는 경북 영천시가 지역특성화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했으며 지역의 고부가가치의 특화상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오색 컬러 포도는 다양한 색만큼이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소비자의 호응이 크다. 그것은 일반 포도보다 4배나 비싼 판매 가격으로도 확인된다. 영천시 농업기술센터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출하된 오색 컬러 포도는 농가의 아이디어가 고부가 가치 창조와 농가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훌륭한 사례“라면서 “차별화한 생산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는 등 지속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조 고추는 자라나면서 색깔이 변하는 ‘칠면조 고추’다. 생장기 동안 연노랑에서 짙은 노랑색으로, 다시 빨강으로 변한다. 매운맛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특히 당뇨 예방이 효과가 있는 ‘기능성 고추’다. 당조 고추를 개발한 제일종묘농산(주) 박동복 대표는 항암 배추인 베타 쌈배추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배추와 순무 간 이종교배를 거쳐 탄생한 베타 쌈배추는 세계 최초로 식물 간 이종교배 성공작이다. 베타 쌈배추는 한국이 종자종주국인 셈이다. 또 생육이 빠르고 수확량이 많으며 사계절 재배가 가능한 기능성 쌈 채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베타 쌈배추는 항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이 일반 배추에 비해 48배나 많이 들어 있어 암세포를 억제하는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동복 대표는 “종자를 재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종자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면서 “육종은 반도체 이상으로 매우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종자 개발이 아닌 재배기술 개선이나 포장기술을 토대로 한 농업벤처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이상대 박사팀은 최근 종목 밑부분을 땅에 묻어 상황버섯을 재배하던 것을 공중 다단계 재배(뽕나무 줄기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 재배하는 방식)법을 개발했다. 이로서 1㎏에 최고 1000만 원을 호가하던 가격도 100만 원 정도로 낮출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개선법이다. 이상대 박사팀은 지난해 6월 미국 FDA로부터 식품승인을 받았다.

독특한 창의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고정관념을 탈피함으로써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상품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의 농업이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생존, 영양, 맛이라는 농산물의 본래 기능에다 다양한 맛과 새로운 기능을 더해가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