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무 - 무 장사는 속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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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무 - 무 장사는 속병이 없다

입력 2008.12.16 00:00

우리 농산물의 재발견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보면, 정유년(1597년) 음력 9월 명량에서 크게 이기고 우수영(해남군 문내면)으로 돌아온 이순신이 배의 부서진 부분과 군비들을 고치게 하면서 저녁 무렵 백성들이 버리고 간 빈 밭에 월동 무 씨앗 다섯 되를 심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군량을 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중국의 제갈량도 원정갈 때마다 주둔지에 순무를 심어 수십만의 군사를 먹였다고 한다.

예부터 병가에서 무를 소중히 여긴 것은 우선 겨울철에 자라는 작물이 몇 안 되기 때문이다. 보리나 밀도 있지만 이들 곡식은 이듬해 초여름이나 돼야 거둘 수 있고 그 양도 10a(300평)에 300㎏ 남짓이다. 하지만 무는 심고 나서 두세 달이면 수확할 수 있다. 또 모든 농산물을 통틀어 크기가 가장 큰 축에 속할 정도여서 10a당 수확량도 곡식의 10배, 20배인 3000~6000㎏에 달한다. 땅 속에서 자라는 것도 큰 이점이다. 추위와 비바람, 눈보라에 노출된 보리 등과는 달리 따뜻한 흙에 덮혀 자연재해를 훨씬 덜 입는다.

소화 돕고 니코틴 중화 해독작용
캐낸 무를 움을 파 저장하고 짚이나 섬피로 덮어 놓으면 겨우내 걱정이 없다. 비단 겨울뿐 아니라 사철 재배할 수 있다는 점도 무의 매력이다. 싸움을 좇아 자주 옮겨야 하고, 언제 말발굽이 휘몰아닥칠지 모르는 전장에서 무는 쌀과 고기 못지않은 가치를 가졌다. 실존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마천이 <사기>에 중국의 가장 오래전 왕조로 기록한 하(夏)나라 때부터 무를 길러 먹었다고 하니 유래가 매우 깊은 음식이다. “누구는 산삼뿌리 먹고, 누구는 무뿌리 씹냐” “산삼도 잘못 먹으면 무뿌리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 토종 무는 소화와 해독 작용을 돕고 원기를 북돋아 그 효능이 산삼과 맞먹는다고 한다. “무 장수는 속병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무에는 소화를 돕는 각종 효소가 함유돼 있다. 전분 분해 효소인 다이아스타제가 많이 들어 있고, 단백질과 지방 분해 효소인 프로테아제와 리파아제도 제법 많다. 따라서 고기나 생선회를 먹을 때 무와 같이 먹거나 무즙에 찍어 먹으면 좋다. 비타민 C도 100g에 44㎎ 정도로 풍부한 편인데 특히 껍질 부분이 속 부분보다 2.5배나 많이 들어 있으므로 깎아내지 말고 씻어서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무는 또 니코틴을 중화하는 해독작용이 있으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무를 자주 먹는 것이 좋다.

명나라 때 이서진은 <본초강목>에 무 생즙은 소화를 돕고 독을 푸는 효과가 있으며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살결을 곱게 한다고 적었다. 또 담을 제거하고 기침을 그치게 하며 설사와 각혈을 다스리고 속을 따뜻하게 하며 빈혈을 치료한다는 기록도 있다. <향약집성방>에는 수제비를 만들 때 무를 갈아서 함께 반죽하면 배부르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메밀국수를 먹을 때 무를 갈아서 양념국물에 넣거나 냉면에 무채를 얹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의 씨앗은 내복자라는 이름으로 한약재로 쓰인다. 기를 통하게 하고 체한 것을 내려가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복부창만(배가 몹시 불러 오르면서 속이 그득한 감이 있는 증상)과 트림·위산과다·설사 등에 사용한다. 해수·천식·변비에도 효과가 있으며, 포도상구균과 피부진균 등의 활동을 억제하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염증을 낫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