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의 재발견
고추를 수확하며 환하게 웃는 농군의 얼굴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농민신문 제공>
'고추밭에 그네 뛴다.’ 몹시 작은 사람이나 괴상망측한 짓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못마땅해 투덜대는 상대에게는 “고추 먹은 소리 하지 마라” 하고 핀잔을 주곤 한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고추바람’이라 하고, 늙은이의 작고 볼품 없는 상투를 ‘고추상투’라 불렀다. 이렇듯 고추는 외양은 추레하고 작지만 속에 품고 있는 에너지는 엄청난데 그 바탕이 야멸치다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우리 고추 품종은 동남아나 유럽·멕시코 등지의 품종에 비해 훨씬 덜 매운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1970년대 말의 고추파동 때 맛봤던 멕시코 고추는 이를 실감케 했다. 한 해 평균 8만~9만t 생산되던 고추가 1978년에는 최악의 가뭄으로 고작 4만2000t을 수확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품질을 이야기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정부가 부랴부랴 인도와 멕시코에서 고추를 들여왔고, 집집마다 배급표를 나눠줬다. 하지만 그 멕시코 고추라는 것이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맵기만 하고,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아 외면당했다. 고추파동을 계기로 정부는 주로 농산물 가공 사업을 하던 농어촌개발공사로 하여금 부족한 농수산물을 수입하고 홍수 출하 농산물은 수매, 비축하는 수급 안정 사업에 뛰어들도록 했다. 농어촌개발공사는 이 사업을 아예 주력사업으로 삼아 1987년에 농수산물유통공사(aT)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서 고추 다이어트 열풍
고추의 매운맛은 캅사이신(capsaicin)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품종과 재배 방법에 따라 0.1~1%까지 함량이 조금씩 다르다. 고추씨에 가장 많이 함유돼 있으며 껍질에도 상당량 들어 있다. 이 물질은 고추가 자라는 데는 별 상관이 없으나 다른 식물이나 동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고 씨를 퍼뜨려 번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에 따르면 자극성이 강한 탓에 흔히 고추를 많이 먹으면 위가 손상된다고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오히려 위궤양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 위암 발생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균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고추는 비타민 A와 C도 풍부해 웬만한 과일보다 많은 양을 함유하고 있다. 물론 가장 일반적인 용도는 열매를 말려 빻은 다음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하는 향신료로 쓰는 것이지만, 요즘은 청양고추·오이고추 등 풋고추를 생으로도 많이 먹고 꽈리고추를 조려서 반찬을 하거나 부각을 만들기도 한다. 잎은 나물로 먹는다. 한방에서는 중풍과 신경통·동상 등을 다스리는 약재로 쓴다. 구충제로 활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에선 고추 다이어트가 한창인데 매운 성분이 열을 내서 지방을 태우는 원리라고 한다.
좋은 건고추는 우선 윤기가 나고 광택이 좋으며 표면은 선명한 붉은색이어야 한다. 속심의 붉은색도 짙은 것이 좋다. 고추씨는 적을수록 좋고 흔들었을 때 씨앗 소리가 딸랑거려야 한다. 껍질은 두꺼울수록 좋은데 이런 고추들은 다소 검은 듯 보이지만 빻아놓으면 색깔이 좋고 가루가 많이 나온다. 건고추는 시간이 오래되면 색이 바랜다. 일반 가정에서는 건고추를 오래 보관하기 어려우므로 되도록 빨리 손질해 고춧가루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덕한<농민신문 기자> dkn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