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습관을 바꾸자
조선시대 선농제 뒤풀이 먹을거리로 개발, 서민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
사골과 도가니로 국물을 낸 설렁탕과 밥, 김치가 한 상 차려져 있다. <경향신문>
"파양념과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무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고량진미를 가득히 늘어놓고도 입맛이 없어 젓가락으로 깔짝거리는 친구도 설렁탕만은 그렇게 괄시하지 못한다.”
1929년 12월 1일 ‘별건곤’이란 잡지에 ‘우이생(牛耳生)’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가 ‘괄시 못할 경성(京城) 설렁탕’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다.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지 못한다. 도시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화한다. 서울 생활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 60년 전 서울은 지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맛과 멋도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이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설렁탕 맛이다. 설렁탕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기는 대중음식이 된 이유도 변하지 않는 맛 덕분이다. 좀 이름이 난 설렁탕 집은 매끼니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예사다. 잡육과 내장 등을 가마솥에 넣고 뽀얀 국물이 나도록 곤 설렁탕의 구수함과 담백함 속에는 우리의 전통의 맛이 숨어 있다.
투박한 질그릇, 국물문화의 진수
설렁탕은 본래 조선시대 임금이 상하, 관민, 귀천 없이 고루 백성들에게 내린 전통적인 음식이다. 임금이 백성의 안태를 보살피는 상징과도 같은 음복음식이다. 봄철에 조선 임금은 선농단(先農檀)에 나가 제사를 지냈다. 선농제는 인류에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신농씨와 후직씨를 주신으로 모시는 제사다. 선농단과 관련된 최고(最古)의 기록은 세종대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대왕이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비가 장대처럼 퍼부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자 논에 있던 소를 잡아 푹 끓여 먹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백성들에겐 이 제사 역시 좋은 구경거리였다. 먼발치에서라도 제사를 바라보기 위해 백성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물론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당시 상황에서 뒤풀이에 대한 기대는 당연한 일이다. 국물은 나눔의 음식이며 서울 음식이다.
곡식으로는 쌀과 기장, 고기는 소와 돼지를 통째로 제단에 올렸다. 선농제에 썼던 소와 돼지는 국을 끓였다. 신에게 바친 소를 신성시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제사상에 오른 소를 한 군데도 벌리지 않고 국을 끓여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오늘날 설렁탕의 기원이 된 선농탕(先農湯)이다. 선농탕이 자음접변으로 설농탕, 설롱탕으로 변했다. 여기에는 눈처럼 하얀 뽀얀 국물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설롱탕은 다시 모음조화로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제사를 지냈던 쌀도 임금이 직접 경작한 것이라고 한다. 창경궁에 가면 ‘춘당지(春堂池)’라는 연못이 있다. 이곳은 원래 영·정조가 친히 농사를 짓던 경작지인 ‘권농장(勸農場)’이다. 이곳을 일본이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것도 모자라 권농장을 없애버렸다. 백성에 대한 임금의 사랑의 징표를 없애버린 것이다. 하지만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권농장을 없애도 임금과 백성을 잇는 통로인 설렁탕과 그 맛은 없앨 수 없었다.
설렁탕에 엮인 사랑은 수직적이지만은 않다. 수평적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에게 국물은 ‘정’의 음식이다. 따끈한 어묵 국물, 시골 장터에서 소주 안주 삼아 후루룩 털어 넣는 가락국수 국물, 돼지 머릿고기와 함께 곁들여 나오는 구수한 술국…. 특히 투박한 질그릇에 담긴 설렁탕은 국물문화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설렁탕 국물이 무한정 ‘리필’이 가능한 것에도 가난했던 우리 선조들의 눈물어린 정이 스며 있다.
미국인 아침 메뉴로 점차 인기
여성들이 설렁탕의 기원으로 알려진 선농탕을 가마솥에 끓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어떻든 선농단 제사 음식이 서민 음식으로 바뀐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무엇보다 설렁탕의 값이 싸고 영양가가 만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던 옛날에 설렁탕은 몸보신에 좋은 별미음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먹기도 편하고 먹고 나면 장시간 든든한 고깃국이라 오래도록 두터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갈비탕, 자장면과 함께 서민의 3대 외식 음식에 포함되었을 정도다. 그만큼 서민의 애환이 묻어 있는 것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없는 날’에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인력거꾼인 김첨지가 운수가 유난히 좋았던 어느 날, 80전이나 되는 큰돈을 벌었다. 모주 한 잔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병석에 누운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을 사가지고 집에 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영양 창고인 설렁탕으로 아내의 병구완을 하려 했던 김첨지의 애뜻한 정을 느끼게 한다.
손정규는 ‘조선요리’에서 “설렁탕은 소의 고기와 내장, 뼈 등을 하루쯤 곤다. 경성 지방의 일품요리로서 값이 싸고 자양이 있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알려진 일이지만 설렁탕에는 암 예방과 면역 기능을 높여주는 콜라겐이 많이 들어 있다.
사골 골수를 우려낼 때 나오는 칼슘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칼로리가 높지 않아 비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설렁탕(밥 포함·460㎉)은 된장찌개(밥 포함·390㎉)나 김치찌개(밥 포함·450㎉)보다 높지만 갈비탕(밥 포함·500㎉) 육개장(밥 포함·500㎉) 부대찌개(밥 포함·640㎉)보다는 상당히 낮다.
이제 설렁탕은 미국인들의 아침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로스엔젤레스타임지는 최근 “설렁탕이야말로 아침에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식사”라며 “밤새 술을 마셔 무기물이 몸에서 빠져 나갔을 때 원기 회복용으로 그만”이라고 치켜세웠다. 외국 음식을 까다롭게 따지는 미국 미식가에게 건강식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설렁탕이 외국에 알려진 사연은 이렇다. 가난했던 시절 미국에 유학했던 유학생들이 돈을 별로 안 들이고 몸보신하는 방법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소 뼈다귀를 구해 푹 고아 밥을 말아 먹었더니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았다는 것이다. 유학생들은 그렇게 건강을 유지했다고 한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