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무·고추·마늘 등 젓산발효 도와 감칠맛 살려
한 기업체 임직원들이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담그고 있다. 각종 양념 재료와 젓갈류가 어우러진 김장 속이 먹음직스럽다.
베트남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거의 없다는 점에 동감한다. 베트남 쌀국수나 베트남식 쌈인 ‘춘권’ 등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음식이다. 베트남 간장의 일종인 ‘능맘’을 입에 댄 사람은 그 독특한 향에 혀를 내두른다. 능맘은 생선을 삼베 주머니에 넣고 눌러서 나온 액에 소금을 넣고 끊여서 숙성시킨 일종의 젓갈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음식에 이것으로 간을 한다.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갔던 황적중(31)씨는 “능맘은 중국의 향료보다 향이 진하고 젓갈을 만들 때 나는 냄새는 역겨울 정도”라면서 “냄새가 얼마나 진한지 아내와 한동안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젓갈 종류 30가지 넘게 식탁에 올라
젓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고대부터 전해내려온 수산 발효식품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에서는 식사가 단조롭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조미료를 많이 사용했다. 추운 지방에서는 콩을 이용한 장류를 선호했고, 더운 지방인 동남아에서는 작은 생선이나 새우를 이용해 만든 젓갈에 더 친숙했다. 우리나라와 일본과 같은 중간지대에서는 두 가지가 다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젓갈은 단출하다. 명란젓과 오징어젓밖에 없다. 오징어젓갈(이카노 시오카라)을 만들 때는 유자 껍질을 잘게 썰어서 조각낸 오징어와 함께 버무려서 맛을 낸다. 일본의 오징어 젓갈에는 오징어 창자(내장겳考?를 짓이겨 넣는다.
일본에도 ‘명품 오징어젓갈’이 있다. 가와사키의 명물로, 이 지역에서 나는 ‘투명오징어’ 젓갈이 그것이다. 투명오징어는 원래 심해저에 사는데 가와사키 근처 해수면으로 떼지어 올라와서 산란을 한다. 이때 파란빛을 내는 투명오징어 떼가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가와사키를 찾은 사람이 빠뜨리지 않고 먹고 가는 음식이 바로 ‘투명오징어젓’이다. 투명오징어젓은 우리의 꼴뚜기젓처럼 통째로 담는 게 특징이다.
담그는 시기 따라 맛도 달라져
인천 소래포구를 찾은 시민이 새우젓 등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류와 젓갈이 모두 발달한 독특한 나라다. 젓갈류 종류에서도 알 수 있다. 그 종류만 해도 점새우젓·조기젓·청란젓·명란젓·갈치젓·황새기젓 등 30가지가 넘는다.
젓갈은 발효 기술과 숙성 기간, 첨가 재료에 따라 젓갈류, 식해류 그리고 액젓으로 구분된다. 젓갈을 담그는 방법에 따라 분류해보면 식염만 사용해서 발효시키는 새우젓·조개젓·갈치속젓·멸치젓 등이 있는가 하면, 소금으로 발효시킨 후 고춧가루·마늘·생강·깨 등을 첨가하는 명란젓·창란젓 등이 있다. 또 곡류를 혼합해 숙성시킨 식해류도 있다. 식해류에는 가자미식해(밥식해)·명태식해 등이 있다.
이같이 다양한 젓갈이 발달한 이유로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각종 어패류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김치를 빼놓고 우리나라의 젓갈을 설명할 수 없다. 젓갈은 김치의 부재료면서도 김치의 대용부식이다. 이서래 이화여대 교수(식품영양학과)는 ‘한국의 발효식품’이라는 저서에서 “젓갈류의 발효 과정에는 생선겵떠낮?조직 내의 효소와 세균(혐기성 및 내염성)의 작용이 필요하며 단백질의 가수분해와 아울러 향미 성분이 합성하면서 조미료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향신료로 사용하는 젓갈은 김치의 주원료인 배추와 무 그리고 부재료인 고추겦떪?등의 젖산 발효를 도움으로써 김치를 더욱 신선하고 맛있게 만든다.
젓갈을 담그는 시기, 숙성 기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에서도 잘 보여준다. 임금님이 이름도 모른 채 먹었던 고래고기 맛에 감동했다. 물론 주인공 장금이 만든 음식이다. 임금님은 이 음식 맛을 크게 칭찬했다. 이를 시기한 최 상궁이 장금이가 미각을 잃었다고 모략했다. 수랏간에서 몰아내려는 음모였다. 하지만 이 음모는 숙성 정도와 발효 시기에 따라 달라진 젓갈의 맛조차 구분해내는 장금의 ‘절대미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중견 나인들도 맛으로 구분하기 힘든 오젓(5월에 담근 새우젓으로 붉은빛을 띤다), 육젓(6월에 담근 새우젓, 흰 바탕에 붉은빛이 나는 최상품 새우젓), 추젓(10월에 담근 새우젓으로 새우가 연하고 희다), 새하젓(한겨울에 나오는 새우젓으로 희고 맛이 담백하다)을 가려낸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젓갈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음식이었다. 이서래 교수는 “당시 새우젓을 만들 때 전복겳응?무 등을 미리 절였다가 소금기를 약간 뺀 다음 새우와 함께 담았다”면서 “젓갈 담그는 법이 지금보다 다양했고 이는 곧 젓갈이 식단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젓갈류의 재료인 생선이나 새우 등 수산물은 김치에 단백질과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시킴으로써 김치가 가장 균형 있게 영양을 갖춘 건강식품으로 가치를 높인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영양식이라고 하기에는 섭취량이 너무 적다. 또 젓갈류의 화학성분은 원료에 따라 다르다. 명란젓은 비타민 B1, B2가 특히 많다. 새우젓은 중요한 아미노산 공급원이다. 멸치젓은 아민과 히스타민 함량이 많다. 식해는 고혈압과 피부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