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의 재발견
보리밭을 찾은 어린이들이 보리피리를 불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보리 수매가 한창이다. 그런데 그 값이 40㎏ 한 포대에 3만 원대로 형편없이 추락했을 뿐 아니라 이마저도 지난해보다 낮아진 값이다. 요즘처럼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시국에 값이 내리는 것도 있다니. 게다가 정부는 2012년부터 수매를 완전히 끊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쌀 다음의 식량, 보리가 어쩌다 이리 됐을까. 이제는 군대와 학교 급식에서조차 보리밥을 보기 어렵다. ‘보릿고개’에서 벗어난 경제 성장의 대표 이미지가 ‘흰 쌀밥’인데다 결정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꺼칠하고 방귀 뿡뿡 나오는 보리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리밥 대신 흰 쌀밥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였다. 말 그대로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셈이다.
또 하나, 한때 일시적으로 남아돌았던 쌀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예전에 권장하던 ‘혼식’을 없애는 방법으로 쌀 소비를 늘린 정치적인 측면도 있다. 서로 다른 영양 가치는 고려하지 않고, 쌀과 보리를 그저 밥보를 채우는 동일한 기능의 대체재로 여긴 탓이다. 이 같은 급식 프로그램의 변화가 비만과 성인병 등을 키우는 등 국민 건강과 영양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구 결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리는 쌀보다 5~20배나 많은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다. 이는 음식물이 장을 빨리, 쉽게 통과하도록 해 대장 기능 향상과 장염·변비 해소에 도움이 된다.
보리는 소화가 잘 되고, 많이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며 지방 축적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 비만 예방과 치료에도 손색이 없다. 특히 베타글루칸이 풍부해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역할도 한다.
보리싹 새싹채소로 길러 먹기도
위와 장의 점막을 튼튼하게 해주는 비타민 B2와 뼈와 이를 튼튼하게 하고 골절 예방 기능이 있는 칼슘도 쌀의 2배 정도 함유하고 있다. 뇌출혈 등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여성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 30여 년에 걸쳐 집대성한 약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안색을 좋게 하고 피부를 곱고 매끄럽게 한다”고 적혀 있다.
보리밥은 사람마다 짓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보통은 보리쌀을 먼저 한 번 삶아 뜨거울 때 소쿠리에 건져 선선한 곳에 놓아두었다가 물기가 가시면 무쇠솥에 밥을 짓는다. 보리쌀을 삶기가 귀찮을 땐 하룻밤 정도 물에 담가 불렸다가 체에 걸러 물기를 빼고 짓기도 한다.
보리밥은 일단 비벼 먹는 것이 기본이다. 흰 쌀밥을 먹는 것처럼 밥 먹고 반찬 먹고 하는 식으로는 특유의 촉감과 냄새 때문에 다 먹기가 힘들다. 때문에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다. 고추장 대신 강된장이나 청국장을 넣기도 한다.
요즘엔 새싹채소로 길러 먹기도 한다. 접시에 수건이나 키친타월을 깔고 보리 씨앗을 뿌린 뒤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루에 두세 번 물을 뿌려주면 1주일 안에 싱싱한 보리싹을 맛볼 수 있다. 주변을 어둡게 해주면 더 잘 자란다. 무쳐먹거나 된장국에 넣으면 좋으며, 홍어 애탕국에 넣기도 한다.
세밀화와 어린이책으로 유명한 ‘보리’라는 출판사가 있다. 왜 보리인가 했더니 소개글에 “보리는 우리 겨레에 중요한 곡식으로 얼마 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양식이었습니다. 가을에 심어 초여름에 거두는데, 추운 겨울을 나야만 알곡을 맺지요.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이 되어 주는 보리를 닮고 싶어서”라고 씌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보리의 진짜 모습이다.
윤덕한<농민신문 경제부 식품팀 기자> dkn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