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애 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위 위원장
흔히 개발사업 예정지의 규모를 따질 때 ‘여의도의 몇 배 크기’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땅의 넓이만으로 따진다면 여의도가 큰 섬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은 섬 안에는 이 나라의 정치·경제·문화를 상징하는 핵심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크고 작은 시위들이 사시사철 이어지지만, 우뚝 솟은 빌딩숲 안에서 우리 사회 주변부의 낮은 목소리가 반향을 얻을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김동애(61)씨는 6개월째 이곳에서 먹고 잔다. 2인용 텐트 안에서 밤에는 잠자고, 낮에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법적 지위 회복을 호소하는 피켓을 치켜든다. 3월 14일 오전, 지난달 27일 미국에서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은 한경선씨의 영정이 피켓을 든 김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황사로 뒤덮인 하늘은 잔뜩 흐렸고, 이날 밤 서울에는 비가 내렸다.
오늘이 며칠째인가.
“작년 9월 7일부터 시작했으니, 오늘로 189일째다. 1주일에 2, 3일은 여기서 잔다. 시작할 때는 20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10여 명으로 줄었다. 대부분 선생님이 지방에서 올라온다. 낮에 강의하고 저녁에 서울로 올라와 다음 날 새벽에 내려간다. 힘들 수밖에 없다.”
천막 농성의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국회에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과 관련된 법안이 두 개 묶여 있다.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2007년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17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기 전에 처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가을에만 통과됐더라도 두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한성대학교에서 대우교수라는 이름으로 7년 6개월 동안 일했다. 말이 대우교수지 한마디로 편법 교수였다. 교육부에는 전임교수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강의료만 일반 시간강사에 비해 2배 더 받는 식이었다. 1999년 2학기에 강의료가 절반만 나왔기에 학교 측에 물어보니 대우교수 자리가 없어졌다고 했다. 직위해제 및 감봉 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때 이후 계속 싸우고 있다.”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얻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 언론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열악한 처우를 받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고 있는 강사들은 현행법상 교원이 아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교원이 아닌 사람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또 하나, 시간강사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강의해야 한다.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연구하고 어떻게 논문을 쓸 수 있겠나.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주는 것은 우리 대학 교육의 내용을 지키는 일이다.”
좀 더 쉬운 방법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싸우나.
“안 써본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들도 만나봤고, 교육부와 청와대 면담도 신청했다. 소용없었다. 이 방법이 최선이다.”
언제까지 싸울 생각인가.
“시간강사가 교원 지위를 얻는 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 교육부가 문제다. 국가인권위에서 2004년에 차별개선권고안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묵살했다. 교육부 관료들은 퇴임 후 대학으로 간다. 대학이 싫어하는 정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대학과 교육부 사이에 있는 담합의 고리를 파헤쳐 잘라내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