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교육 혁신 대책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영어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인수위는 1월 22일 영어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한다는 계획과 함께 영어 이외의 수업도 영어로 진행한다는 이른바 ‘영어 몰입 교육’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것도 모자라 영어 실력이 우수한 사람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안까지 발표하면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28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영어 몰입 교육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발뺌했지만 공청회를 열면서 반대 단체를 배제해 또 다시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어 공교육 혁신 방안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지금 이대로라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상류층 아이들만 일류대에 가는 문제가 심화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대학들은 영어 점수에 변별력이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별개의 평가방식을 만들 것이다. 인수위의 얘기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이다.”
<하재근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영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투자를 늘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현재 공교육이 그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 문제가 발생한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의욕이 너무 앞서다 보니 예상되는 반발에 대한 인수위의 정책적 고려가 부족한 듯하다.”
<복거일 소설가>
“교실 수업은 중위권 학생들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학생들은 더 잘하기 위해 학원으로 가고,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학원에서 벌충하려 한다. 수준별 이동 수업을 강화하고 하위권 학생들에 대한 보강 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5년은 짧은 시간이다.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
“상당한 논의와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인수위 발표가 나기 무섭게 사교육 관련 기업 주가가 치솟았다. 인수위가 무책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영어 교육 혁신 방안은 전면 수정해야 한다.”
<정애순 전교조 대변인>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만 하는데 학교 교육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현장에 대한 고려 없이 교사 탓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만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 학생, 정책의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김나연 고등학교 영어 교사>
“한국 사회에는 그 나름의 문화적 고유성이 있다. 모든 사람이 영어를 다 잘할 필요가 있나. 그것은 한국을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자는 소리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국민들의 불신을 사는 지름길로 가고 있다. (인수위 방안에 대해서는) 어차피 안 될 일이라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등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을 보면 계층에 따라서 영어 실력에 차이가 난다. 인수위 방안이 추진된다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물질적 뒷받침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뒤처지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영어에 투자를 많이 하면 영어 실력은 당연히 올라간다. 다만 영어만을 위해 그러한 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어를 꼭 써야 하는 사람말고는 모국어 실력만으로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시정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