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즈 필로 시리즈
철학만 떠올리면 머리가 아프다고?
크리스토프 라무르 외 지음 고아침 외 옮김 개마고원 각 권 9000~1만2000원.
많은 사람이 철학은 일반인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알고 보면 철학은 우리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매순간 철학과 부딪치면서 살고 있다. 삶 자체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어렵다는 데 있다. 철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의 말과 글이 어렵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이 쓴 서론만으로, 혹은 목차만으로도 학위논문을 쓸 정도라는 사실은 그들의 글과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한다.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철학을 우리 곁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즈 필로’(이를 해석하면 ‘잠깐의 철학’ ‘쉼의 철학’이다)라고 명명한 시리즈는 일상생활과 철학을 연결해 우리의 사유를 독창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철학 대중화’를 시도하는 셈이다. 100권을 목표로 진행하는 철학 대중화 작업에 우리나라의 한 출판사(개마고원)도 동참해 1차분으로 먼저 5권을 출간했다. ‘걷기의 철학’ ‘쇼핑의 철학’ ‘와인의 철학’ ‘슬픈 날들의 철학’ ‘행복생각’이 그것이다.
‘걷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철학·사유와 매우 친숙하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소요학파). ‘걸어다니는 시계’였다고 하는 칸트의 예를 비롯해 많은 철학자가 걸으면서 사유했고 삶의 정의를 내렸으며 존재에 대해 탐색했다.
쇼핑에도 철학이 스며 있다. 쇼핑을 단순히 ‘물건을 구경하고 그것을 구입하는 행위’로 국한한다면 그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이다. 구매는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이며 소비할 때 인간은 유희를 맛본다. 또 돈을 지불하고 산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도 철학과 관련이 있다. ‘구경하기’ ‘선택하기’ ‘구매하기’ ‘소유하기’와 같은 쇼핑의 단계는 온전히 하나의 철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날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는 법이나 라벨을 읽는 법에 관심을 가질 뿐 와인을 마시는 데 어떤 철학이 숨어 있는지 알려는 사람은 드물다. ‘와인의 철학’의 저자는 와인을 마시는 법과 지켜야 할 에티켓 같은 실용적인 면을 배제한 채, 우리가 왜 와인을 좋아하는지, 와인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와인에 빠져드는지 철학적으로 고찰한다. 마치 와인 시음회에 초대받은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비록 가벼운 분량이지만 쉬운 글로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시선을 선사한다.
인간은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생각의 넓이와 깊이 또한 훨씬 넓고 깊다. 기쁠 때 한껏 부풀어 오른 사유에 비해 눈물과 한숨으로 거른 슬플 때의 사유는 그만큼 깨끗하고 냉정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듯 그 사유는 또한 매우 역동적이다. ‘슬픈 날들의 철학’의 저자는 슬픔에 빠져 허덕일 때, 우리가 놓친 삶의 희망과 암시를 끄집어낸다.
철학의 목적은 아주 다양하다.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 추구도 빼놓을 수 없다. 불행해지기 위해 철학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철학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즉 행복해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쾌락, 사랑, 영원 등과 같이 철학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낱말이 모두 행복과 연결돼 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생각’의 저자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준다.
철학을 쉽게 풀어낸 ‘포즈 필로’ 시리즈는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볍고 분량도 휴대하기에 알맞다. ‘철학 대중화’를 표방하고 나선 철학교수·교사가 주축이 돼 펴낸 이 시리즈는 철학만 떠올리면 머리가 아픈 일반인에게 철학과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자동차의 역사
자동차는 언제부터 ‘애마’가 되었나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많은 사람이 집 다음으로, 혹은 집보다 먼저 자동차를 생각할 정도로 자동차는 우리 삶의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한낱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자동차가 이토록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욕망과 매혹덩어리고, 소유와 과시의 대상이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과 개성의 상징이다. 자동차는 또 움직이는 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화젯거리에서 자동차를 빼놓지 않는다. 자신의 자동차를 ‘애마’라고 부르며 매우 소중히 여긴다.
120년 전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됐을 때(독일의 교통 전문 역사학자인 쿠르트 뫼저는 ‘자동차의 역사’에서 1886년을 자동차의 ‘빅뱅’, 자동차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해에 두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나는 카를 벤츠가 엔진 자동차 특허를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가솔린 기관을 실은 마차로 처음 실험한 것이다)만 해도 자동차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20년의 자동차 역사를 다룬 이 책에서 뫼저는 자동차에 꽤 우호적이다.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인간을 더욱 개인주의에 매몰시키는 자동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뫼저는 반박한다. 단순히 이동혁명이라는 측면에서의 가치뿐 아니라 자동차는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고, 앞으로도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뫼저는 독일의 자동차 발전을 주로 이야기한다. 자동차는 독일의 발명품이며 기술이나 디자인에서 독일이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독일에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유명 자동차 회사가 많다. 그러나 독일에 국한해서는 자동차의 역사를 서술할 수 없다. 비록 자동차는 독일의 발명품이었지만 프랑스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고 미국의 포드 혁명을 통해 대중화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동차 발명자, 설계자, 기술자 등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 자동차 브랜드의 역사나 모델, 디자인에도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 물론 기념비적인 모델이나 인물조차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동차 사회, 교통시스템, 자동차의 즐거움, 자동차의 미학 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더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쿠르트 뫼저 지음 김태희·추금환 옮김 뿌리와이파리 3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