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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조작사건의 재심, 그들이 뛴다

입력 2007.10.09 00:00

인권변호사들의 외로운 분투기, 보수적인 법원·참고자료 부족으로 맘고생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희철씨는 재심을 진행 중이다.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희철씨는 재심을 진행 중이다.

군사정권 시절 공안사건의 재심 및 손해배상소송은 여느 재판에 비해 까다롭고 복잡하다. 변호사들이 좌충우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 동시에 그들은 허술하고 보수적인 재심체계에 부딪혀 고민하기도 한다. 변호사들의 분투기를 따라가봤다.
지난 1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고인들(1974년 사형선고를 받고 형을 집행당했음)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날 이유정 변호사(법무법인 자하연)는 밤새 뒤척였다. 특별히 악몽을 꾸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곤 했다.

“5년 전 어느 날 쭈뼛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겨울공화국’의 자료를 읽을 때였어요. 갑자기 억울하게 죽은 피고인들이 절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사기관의 주장과 달리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던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지 17시간 만에 사형당했죠. 비로소 사건의 심각성이 와 닿았어요. 사실 그 전엔 재심 검토를 맡았어도 ‘그 시절엔 다 그랬지’ 했거든요.”

조총련계 친척이 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아 일가가 3~15년의 징역을 받은 신귀영씨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조총련계 친척이 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아 일가가 3~15년의 징역을 받은 신귀영씨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법적 해결을 넘어 과거사 청산 고민”

만삭인 상태에서 유족들의 진술을 정리하던 2001년 겨울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뻘 되는 유족들이 사건 진술을 하면서 그녀 앞에서 펑펑 울었다. 사실 유족들은 처음엔 나이 어린 이 변호사보다, 소송의 총지휘자였던 김형태 변호사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들은 이 변호사에게 마음을 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재심 결정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2년에 신청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사이 담당판사도 여러 번 바뀌었다. 2003년 12월, 드디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가 열렸지만 또 하세월이었다. 검찰도 ‘(재심을) 반대 않겠다’고 했지만 법원은 수년간 망설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원이 과거사 정리에 얼마나 소극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984년 제주항에서 수사요원들에게 연행된 후 간첩으로 발표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장형씨.

1984년 제주항에서 수사요원들에게 연행된 후 간첩으로 발표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장형씨.

한편 이 변호사는 요즘 재판을 ‘넘어선’ 고민도 하고 있다. 무죄선고를 받은 뒤 이어진 손해배상소송에서 이 변호사는 김형태·김미경 변호사와 함께 637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는 “‘진상규명-재심-손해배상’이 과거사 청산의 전부로 굳어질까봐 걱정된다”며 “법적 해결을 넘어선 다음 단계의 과거사 청산, 이를 테면 시민교육 등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올 가을에 관련 토론회를 계획하고 있다.

최병모 변호사와 김재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요즘 “비행기 마일리지 많이 쌓였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난 1년간 강희철 사건의 재심을 위해 제주지방법원을 20여 차례 오갔기 때문.

‘강희철 사건’은 오사카 총련계 학교를 나와 제주도에 살던 강씨가 1986년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 강씨를 판결한 대법관이 회고록을 통해 “공소 사실 자체에서 내다보이는 조작성”을 언급하며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사건이다. 법원은 수사가 불법적이었다는 점(불법 연행·감금)을 받아들여 재심을 결정했다.

지난 1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 사건에 대해 ‘이승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인권유린’ 으로 결정했다. 조봉암 선생의 유족은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지난 1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 사건에 대해 ‘이승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인권유린’ 으로 결정했다. 조봉암 선생의 유족은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사실 그간 변호인단은 맘고생을 많이 했다. 검찰과 소모적인 신경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1986년 검·경에서 진술했던 모든 참고인 40여 명에 대해 다시 증인 신청을 했어요. 일부에 대해서는 신청을 거둬들였지만, 20년 전의 증인들을 불러 심문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죠. ‘강씨가 오사카 총련고급학교를 나온 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정도의 기초사실을 (20년 전에) 진술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증인 신청을 했으니까요.”(김재영 변호사)

검찰과 ‘대립 아닌 대립’으로 신경전

우여곡절 끝에 ‘강희철 사건’의 재판은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일본에 살고 있는 두 명에 대한 증인 신청을 끝내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결심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남쪽에 내려와 자수한 후 평범하게 살던 함주명씨는 1983년 수사기관에 갑자기 끌려가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5년 7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됐다.

남쪽에 내려와 자수한 후 평범하게 살던 함주명씨는 1983년 수사기관에 갑자기 끌려가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5년 7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됐다.

검찰과의 ‘대립 아닌 대립’은 재판 초기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검찰은 피고인이 경찰의 협박 끝에 잘못된 진술을 한 것이지 검찰이 진술을 조작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 주장으로도 무죄를 받아낼 길이 있으니, 변호인도 손해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하지도 않은 말이 검찰 진술조서에 들어가 있다”는 피고인과 참고인들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검찰 진술조서에도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과 신경전이 있었어도 법원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더라면 결심을 무한정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재영 변호사는 “법원이 증거채부결정권을 행사해 검찰의 무차별적 증인 신청에 제동을 걸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류혜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의 고민도 김 변호사와 비슷하다. 류 변호사는 “고문 조작 사건의 재심, 손해배상소송과 관련해 축적된 지식이나 결과물이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얼마 전 재심 결정이 난 민족일보 사건의 변호인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변호인단. 왼쪽부터 김형태·최병모·이유정·박승진 변호사.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변호인단. 왼쪽부터 김형태·최병모·이유정·박승진 변호사. <천주교 인권위 제공>

류 변호사가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조용환 변호사와 함께 최종길 교수의 손배소송을 진행하면서였다. 최 교수 손배소송의 관건은 소멸시효.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리 대결이었다.

류 변호사는 학계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공권력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의 소멸시효를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조차 찾을 수 없었다. 헌법, 민법, 형사소송법, 국제인권법 등 관련법 전공자들을 모아 연구를 진행해 보려고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류 변호사는 그 대신 관련 판례와 학설을 정리해 매뉴얼 형식의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흔히 이런 사건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죠. 그런 생각 때문에 그간 변호사나 학자들도 법리 개발이나 판례 분석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법이 약자의 마지막 힘이 되어줄 수 있는데도, 그걸 활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거죠.”

공소시효배제특별법 국회서 ‘낮잠’

고문 조작에 나섰던 이들을 지금이라도 처벌할 수 있을까. 처벌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은 강희철씨 사건의 공소시효가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김재영 변호사는 강희철씨를 불법체포·구금하고 수사한 경찰들을 제주지검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두 달이 지난 뒤 ‘시효가 완성됐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해버렸다. 공소시효의 폐해를 보여주는 작은 예다.

일부 국회의원이 공소시효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공소시효배제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2년째 잠자고 있다. 공청회 한 번 열지 못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은 “고문 조작을 했던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도 아니고 피해자가 손배소송을 했을 때 국가가 시효가 다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도록 한, 기초적 수준의 법안”이라며 “17대 국회가 이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