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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정 타도 ‘민생 항쟁’

입력 2007.09.25 00:00

시민들 연료값 폭등 항의 대규모 시위… 끔찍한 진압에 국내외서 비난 쏟아져

지난 8월 정부의 연료 가격 인상에 반발해 양곤 시민들이 대정부 시위를 벌이다 사복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의 연료 가격 인상에 반발해 양곤 시민들이 대정부 시위를 벌이다 사복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21세기에도 군정의 서슬 퍼런 칼날이 살아 있는 미얀마에서 시민들의 시위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군정의 탄압으로 반정부 시위가 원천 봉쇄된 미얀마에서 발생한 이번 시위는 시기나 규모 면에서 이례적이다. 군정의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언론 통제는 이미 수위를 넘었다. 미얀마의 현 상황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경험했던 우리에게도 낯선 장면이 아니다. 군정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시위 상황에 대한 소식은 인터넷, 라디오, 위성TV 등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시작 시위는 8월 19일 양곤 시민 500여 명이 정부의 연료 가격 인상에 반발,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시작됐다. 정부가 하룻밤 사이 디젤 가격을 2배, 천연가스 가격을 4배 올린 데 따른 것이다. 생필품을 비롯해 모든 상품과 서비스 물가는 순식간에 치솟았고, 시민들은 당장 직장이나 학교에 갈 차비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 그렇잖아도 가난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창설한 민족민주동맹(NLD) 인사들이 시위를 주도했지만 국민들의 참여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군정은 초반 대응이 기민했다. 미얀마 군정 역사상 가장 큰 반정부 집회로 기록된 ‘88민주항쟁’ 역시 쌀값 인상 등 경제적 이유로 인한 군중들의 항의와 ‘88세대’ 인사들의 주도가 결합된 것으로 이번 시위와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정은 경찰과 군정 지지 세력을 동원해 시위대 해산 조치를 취하는 한편, 21일 밤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88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민 코 나잉 등 13명을 긴급 체포했다. 민 코 나잉은 NLD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다음으로 유명한 민주화 인사다.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구타와 체포 등으로 8월 22, 23일 시위 참여자의 숫자가 현격히 줄면서 시민과 군정의 충돌은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다.

끝나지 않은 시위 그러나 시위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8월 30일에는 북부 카파다웅에서 20여 명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등 전국적으로 산발적 시위가 벌어졌다. 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인권단체들은 9월 들어 양곤, 다카인, 시트웨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에서 체포된 민주화 인사들은 수감 상태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8월 28일 양곤에서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예 테인 나잉이 심하게 구타를 당해 다리가 부러졌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벌인 단식투쟁이었다. 군정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군정은 시위 가담자 100여 명을 체포하고, 주요 민주화 인사들의 수배령을 내리는 등 단속에 나서는 한편, 생필품 가격 인하 장려에 나서 민심을 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연료 가격 인상 전보다 5배 이상 오른 생필품 가격은 내려갈 줄을 몰랐다.

승려들까지 가세 9월 6일 시위에 승려들이 가담하면서 상황은 완연히 재점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승려들이 주로 살고 있는 파코크 지역에서 300여 명의 승려가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평화시위에 가담하자 군정은 승려들을 폭행하고 체포하는 한편, 공포탄을 발사했다.

한 시민이 11년째 가택연금 상태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한 시민이 11년째 가택연금 상태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

승려의 시위 가담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대응은 이유가 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승려들이 정치적 시위에 앞장선 경우 언제나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88년 민주항쟁에서도 승려들은 시위의 선봉에 선 바 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의 높은 신망을 받고 있는 터라 이들의 움직임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과잉 대응은 승려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승려들은 7일 군정 측 경찰 20명을 인질로 잡고 정부 지지자들의 집과 상점을 부쉈으며, 4대의 자동차를 불태웠다. 군정과의 협상으로 인질은 석방했지만, 승려들은 곧이어 ‘국가승려선발대’를 조직, 군정에 승려 폭행 사건 사과, 연료 가격 인하, 정치범 석방,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협상 등을 요구했다. 만일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군정으로부터의 지원을 거부하고 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 성명을 내고 승려들의 폭력 행위를 강력 비난했다. 시민들에게는 시위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높아지는 국제사회의 비난여론 정부는 시위 소식을 유포하는 자를 체포하는 등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NLD 측에서는 군정의 시위대 탄압 장면과 시위 상황을 사진·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등 미디어에 공개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가 있는 미얀마 민주 방송, 인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지마 인터넷 뉴스 등을 통해 시위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다.

끔찍한 시위 탄압 장면을 목격한 국제사회 지도자들은 비난 성명을 통해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얀마 군정에 민주화를 위해 힘써줄 것을 강조했다. 11년째 가택연금 상태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도 촉구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담 참석차 호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얀마 군정에 “평화시위에 참가한 친민주 인사들을 구속하고 탄압하는 행동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지난 8월 30일에도 성명을 통해 “미얀마 당국은 폭력적으로 민주 인사들의 입을 막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평화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한 혐의로 민주 인사들을 체포하고 괴롭히는 미얀마 당국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한다”고 말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비롯해 다수의 언론 역시 미얀마 군정의 민주화 인사 탄압의 역사를 보도하고 나섰다.

이번 시위에 대한 나라 안팎의 지지 세력이 커지고 있어 시위의 폭발력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태국 ‘휴먼라이트워치’의 마티에슨은 “반정부 시위대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라 시위는 88년보다 더욱 폭발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군정에 대항한 시민들의 민주화 항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