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혼전 틈타 돌아온 ‘과거의 유망주’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이 야인생활을 접고 5년 만에 정계에 복귀했다. 그것도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로 돌아왔다. 그는 ‘40대 기수론’을 자칭한다. 그는 출마 선언에서 “저의 목표는 민주당의 재집권”이라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을 압도해서, 이들을 사퇴시키고 민주당 중심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서 한나라당과 대결해 승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사실 청년의 대표주자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 출신인 그는 만 27세 나이로 제14대 총선에 출마, 당시 여당 정책위의장과 부총리를 지낸 나웅배 후보에게 200여 표 차이로 석패했다. 이 지역은 사람 관계를 가장 잘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구인 이용희 의원마저도 나웅배 전 의원에게 두 번이나 졌던 지역이다. 15대 총선에서 탤런트 최불암후보를 누르고 국회에 입성했다. 그의 당선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가 국회의원 회관에 청바지를 입거나 부인을 대동하고 출근하는 일 등은 ‘젊은 사람의 철없음’이 아니라 역동적인 젊음으로 인식됐다.
“김민석이 정말 대단했다”는 국민들의 찬사는 그의 정치적 발전의 큰 밑천이었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서울지역 최다 득표로 당선됐고 30대의 나이에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에 오른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것도 자기 꾀에 넘어간 것이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지방선거 때 그를 성심껏 도운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배신하고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정몽준 의원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로 추락 일로에 있었다. 반면 정몽준 의원은 ‘월드컵 특수’에 힘입어 상한가를 치던 상황이었다. ‘약삭빠른’ 그의 행보에 대한 국민의 철퇴는 가혹했다. 그를 철새정치인의 대명사로 취급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김민석은 철새정치인’이라는 의미로 ‘김민새’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기심과 질시가 지배하는 인간사회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사건’으로 인간을 평가할 정도로 각박하지는 않다.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한 장영달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17대 총선에서 최연소 당선자인 임종석 의원을 불렀다. “김민석을 닮지 말라”는 충고를 하기 위해서다. 장영달 의원은 “야당시절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예뻐해주니 민석이는 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면서 “나도 DJ 주변을 맴돌았다면 지금 이 자리(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운동의 대선배인 장영달 의원이 굳이 임종석 의원에게 김민석 전 의원의 사례를 들어 충고한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광주 룸살롱 사건’ ‘정풍운동 과정에서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지목된 권노갑 전 의원의 편들기’ 등 ‘김민새’와 함께 떠오르는 사건들이 이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