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은 변해도 정보력은 여전
지난 7월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을 다룬 한 인터넷 기사는 ‘정형근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다니’라는 제목을 뽑았다. 정형근 최고위원의 변신에 대한 놀라움의 표시였다. 그는 지난 7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부정한 ‘한반도 평화비전’(북핵 폐지가 전제되면 조건 없이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을 마련하는 일을 주도한 데 대한 ‘비아냥’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뛰어난 정보력’이다. 최근 ‘8·15 남북정상회담 추진설’, ‘북한 2차 핵실험 준비 완료설’ 등을 터뜨려 시들지 않은 정보력을 과시한 그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8월 8일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하기 두 시간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정상회담의 추진과정, 시기 그리고 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 발표 시기까지 술술 풀어냈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8월 초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해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선전부장을 만난 사실까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의 ‘정보력’은 1997년 대선과정에서 ‘DJ 저격수’로 나서면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리고 그는 대선이 끝난 뒤 10여 건의 민·형사소송에 휘말려야 했다. 대선이 끝난 뒤 국정원의 도청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있었다. 이 수사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선 국정원 내 ‘정형근 끄나풀’(딥 스로트·밀고자)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을 정도다.
그의 정보력은 국정원 인사들과 가져온 끈끈한 인맥 그리고 대공대북 전문가의 경력을 활용한 것이었다. 검사 출신인 그는 초임검사 시절부터 안기부에 파견근무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수사단장(부이사관급)을 맡았다. 대공수사단장 시절 선임자의 무고한 해직문제를 풀어낸 일은 국정원 내에서도 아직까지 회자되는 일화라고 한다. 대공수사국장 시절엔 ‘서경원 밀입국 사건’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끊임없는 연구와 보안으로 능력을 키워왔다. 2005년에 2000여만 원의 사비를 들어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보와 관련한 공부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보통 4~5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보안유지를 위해서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을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마라톤 선수 같다”고 밝혔다.
그의 어린 시절은 물배를 채워야 했을 만큼 가난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비를 낸 뒤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공부는 그래서 삶의 수단이 됐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공부습관을 통해 ‘한 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익혔다고 한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