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깬 사회에 맞서 보수주의 길로
찬 소리는 무덤 앞에 가서 하라’(到墓前言方盡·도묘전언방진)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호언장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요즘 ‘투박한 말’로 뜨는 사람이 있다. ‘패널스타’ 전원책 변호사(53)다. 군가산점제도 문제를 다뤘던 KBS 심야토론에 출연한 뒤 그는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인기검색어 1위를 2~3일 동안 차지하기도 했다. 보수적 기조의 그의 발언들이 기죽은 남성들에게 호응을 받은 덕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려진 페미니스트다. 그는 매춘종사자, 동성애자, 낙태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그는 성매매특별법 개정을 앞장서 반대했던 사람이다. 반대했던 이유는 “매춘종사자는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매춘종사자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여성가족부와 치열하게 대립했다. 다만 그의 어투만큼은 ‘남성적’이다. 이에 대한 설명도 “나는 상식적인 얘기를 한다”면서 “사회가 상식을 깨려고 나서니 내가 보수주의자가 됐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생활마저도 ‘이중적’이다. 그는 “나의 본업은 시작(詩作)이고 생업을 위해 변호사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두 차례나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고3(부산고) 때 진해 군항제(전국 백일장) 성인부에 출전해 장원을 하는 등 시인으로 꿈을 펼쳐나갔다. 22세 때에는 ‘동해단장’이라는 연작시로 등단했다.
그가 변호사가 된 것은 생계 문제 때문이었다. 그는 30명 뽑는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했다. 10년 간 군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휴가를 가본 일이 없는 ‘일꾼’이었다. 심지어 제대하던 날도 5시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제대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자신이 모신 군단장이 사단장·여단장을 불러 법률참모의 전역(중령)을 축하해줬다고 한다.
군복을 벗은 그는 다시 시작에 도전했다. 10년 동안 그가 투고한 신춘문예 응모작은 번번이 결선에서 미끄러졌다. 그를 낙선시킨 심사위원은 박두진·조병화 선생. 공교롭게도 그는 후에 그들의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됐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의 마지막 제자가 됐다.
논리적인 법과 상상력에 바탕을 둔 문학, ‘극단’의 두 가지를 접목한 부분은 결국 ‘인간학’이다. 두 분야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 이해. 부조리한 주체인 인간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표현은 역시 말이었다. 이런 요소들이 그가 패널로서 주목받은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그는 또 KBS 제1라디오 수요정치토크-열린토론회에서 보수진영의 패널로 2년 넘게 활약하고 있다. 그가 보수 측 패널로 발탁된 것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렵이었다. ‘침묵하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그의 신문 칼럼이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진보가 나를 꼴통보수로 만들었다”고.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