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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뇌 속 정보의 주인인가

입력 2007.07.24 00:00

뇌는 과학적 대상이 아닌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열쇠

[뇌이야기]당신은 뇌 속 정보의 주인인가

올해 상반기 지구촌의 화제 중 하나는 미국 하버드대 371년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의 탄생이다. 제28대 하버드대 총장에 오른 드류 길핀 파우스트 교수의 선출에는 눈여겨볼 점이 있다. 파우스트 교수는 로렌스 서머스 전 총장이 교수협의회로부터 탄핵압력까지 받을 만큼 교수진과 갈등이 큰데다 독단적 학교운영 때문에 시비가 끊이지 않아 사임한 후 총장에 당선된 사례다. 더구나 서머스 전 총장의 사임한 결정적 이유는 여성 비하 발언 때문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총장은 한 강연회에서 “과학과 공학 분야 고위직에 여성 수가 적은 이유는 남녀의 선천적인 차이 때문일 수 있다”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고 결국 이 발언의 파장이 사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많은 과학자는 이러한 발언에 대해 아무런 과학적 증거와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릴 적에 흔히 “여자보다 남자가 수학을 더 잘한다”든지 “원래 여자는 수학적 머리가 약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그럴까.

2006년 10월 26일자로 발간한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 에는 의미 있는 논문이 실렸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 연구팀이 3년간 연구한 결과 ‘여성의 수학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고정관념이 주요 원인이다’라고 발표한 것이다. 실제 여성들은 자신이 선천적으로 수학능력이 뒤처진다는 말만 들어도 수학성적이 나빠졌고, 반대로 선천적 차이가 없다고 믿으면 좋아졌다. 부정적 고정관념에 젖으면 뇌상태도 부정적으로 형성된 채 행동하게 되고 실제로 그 능력도 저하한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우리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정보는 주인이 아닌 활용의 대상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한다. 유전자 속에 내려온 선천적 정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받아들이는 정보다. 문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을 잘못 인식하고 뇌 속에 저장하면,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고 나의 가능성을 자신도 모르게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는 개인적으로 형성한 정보 이외에도 앞서 “여성은 본래 남성보다 수학을 못해”처럼 거대한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은 고정관념도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은 뇌를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정보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주객이 전도된다. 뇌를 활용하는 주체는 나인데, 그 정보가 거꾸로 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고정관념뿐 아니라 살면서 형성된 다양한 피해의식의 경우는 그 정도가 훨씬 강하다. 마치 정보가 주인이고, 나는 정보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와 뇌를 분리하고, 뇌 속에 형성된 정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의 뇌 속에 있는 숱한 고정관념과 피해의식, 선입견 등을 하나씩 걷어내면, 그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본질이 보인다. 바로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순수한 자아(自我)와 만나는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뇌를 통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뇌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했던 대사처럼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하는 말을 스스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뇌는 정보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

[뇌이야기]당신은 뇌 속 정보의 주인인가

흔히 아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는 약물효과가 없는 가짜 약으로 얻는 치료효과를 말한다. 유당·녹말 등으로 형태·색깔·맛 등을 실제 내복약과 똑같이 만들고, 식염용액 등을 써서 주사약을 만들어 환자에게 진짜 약이라고 말한 후 투여하면 실제 30~40% 정도가 유효한 작용을 나타낸다. 현재 신약을 개발할 때 임상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플라시보를 이용한 이중맹검법(二重盲檢法)이 의무화돼 있을 정도로 의학과 약학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최근 뇌영상 기술의 발달로 심리상태에 따른 뇌 반응연구가 가능해짐에 따라 플라시보 효과도 입증되었다. 미시간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실험 대상자에게 스킨로션을 통증 억제제라고 말하고, 그것을 몸에 발라준 후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의 뇌의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를 사용해 조사했더니 그냥 충격을 가한 경우보다 훨씬 통증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음의 작용과 뇌에 주는 정보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한 예가 상상임신이다. 간절히 임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여성은 종종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도 임신한 것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배도 불러온다. 뇌가 외부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믿으면 뇌는 해당 호르몬을 보내고 신체가 그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놀라운 뇌의 작용이다. 이렇듯 뇌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한 정보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않는다. 올바른 정보를 주는 것과 기존 뇌 속의 부정적 정보를 정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주목할 만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실험집단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약효도 없는 약을 복용하게 하고 그것이 두통을 일으키는 약이라고 말하면 실험에 응한 사람들의 70% 정도는 정말로 두통을 호소한다는 ‘노시보(Nocebo) 효과’다. 잘못된 비난을 가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폄하하면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은 발휘되지도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불쌍한 일은 없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존재가치에 대한 믿음, 자신감과 자존감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갖추어야 할 기본이자 책임이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뇌를 올바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활동, 감정활동부터 도전과 인내, 사고와 성찰에 이르기까지 나의 삶은 곧 나의 뇌가 만들어가는 현실 속 모습이다.

뇌를 움직이는 기본은 ‘정보’다. 또한 뇌의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정보다.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부터 경험에 의한 체험도 정보고, 살면서 겪는 희노애락의 감정 또한 하나의 정보다. 그 정보들 중 뇌의 발달을 가로막고, 온전한 뇌기능을 쓰는 데 장애가 되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정보를 정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뇌가 가진 본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숱한 정보 속에 덧씌워진 나를 올바로 바라보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승헌〈한국뇌과학연구원 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