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지성사 3부작
20세기 지적탐구 결산하다
스튜어트 휴즈 지음 황문수 외 옮김 개마고원 전 3권 2만~2만5000원
미국의 대표 역사학자 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 ‘막다른 길’ ‘지식인들의 망명’은 서구의 지성사를 연구한 수많은 성과물 가운데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세 권은 ‘서구 지성사 3부작’으로 묶여 그가 죽은 후에도 ‘20세기의 지적 탐구를 결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휴즈의 방대한 작업의 가장 독특한 점은 서구 지성사의 서술 시작점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로 잡지 않고 1890년대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 서구 지성사’로 이름 붙여야 마땅할 듯하다.
3부작의 첫째 권인 ‘의식과 사회’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지성사를 다룬다. 휴즈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40여 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새롭고 창조적인 전환의 시기로 본다. 서구사회에서 이 시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대변동이 일어났다. 유럽사회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휩싸였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혼란과 불안에 떨던 이 시기를 휴즈가 ‘인류 역사상 가장 새롭고 창조적인 전환의 시기’로 본 까닭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한 지성이 많았고 그들의 움직임이 매우 뜨거웠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뒤르켐, 베르그송 등 20세기 인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이 이 시기에 활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시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시기의 지적 상황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이전까지 서구사회의 사상을 지배해왔던 실증주의에 맞서 베버, 크로체 등을 중심으로 반실증주의 전선이 형성된 점이다. 둘째는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이다. 휴즈는 인류에 대단한 폭풍을 몰고 온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은 사실 산만하고 모호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셋째는 인간의 무의식에 관한 사상이 전면에 부각했다는 점이다. 맨 앞자리에는 물론 프로이트가 서 있다. 실증주의와 인간의 이성이 주류였던 사회에서 인간 무의식은 충격적인 도전이었다. 넷째는 이 시기가 사회를 관찰하는 지성들의 주관적 태도와 의식이 강조됐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앞의 세 가지가 입증한다. 이 같은 활동은 모두 ‘인간의 의식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는 것으로 귀결할 수 있다.
둘째 권 ‘막다른 길’에서는 1930년부터 1960년대의 프랑스의 사상을 점검한다. 휴즈는 이 시기를 프랑스 사상사에서 ‘절망의 시대’ ‘막다른 상황’으로 규정하고 막다른 길로 치닫는 프랑스 사상을 돌아본다.
막다른 길로 몰리며 절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면 지금의 프랑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성은 늘 막다른 길에서도 희망을 찾아내 돌파해왔듯이 프랑스에도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지성이 있었다. 작가 알베르 카뮈와 신부이자 고고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당,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그들이다. 이들은 폐쇄적이었던 프랑스의 눈을 틔워주어 외부 세계로의 전망을 열어주었다. 이들이 수확한 보편성은 프랑스에 빛이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권인 ‘지식인들의 망명’에서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융성했던 때 유럽대륙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지식인들의 모습과 성과를 보여준다. 망명 지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저자는 당대 상황과 지적 흐름을 조명한다.
휴즈의 3부작이 다른 사상사와 구별되는 점은 사상의 형성과정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지성사가 이미 형성된 사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에 치우친 반면 휴즈는 하나의 사상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이는 ‘생동하는 지성의 움직임’을 파악하겠다는 저자의 의도와 부합한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인간되기-Be-comming Human
구석기 동굴인은 정말 미개했을까?
인류 탄생 이론에는 크게 창조론과 진화론 두 가지가 있다. 많은 사람은 과학적·학문적으로 접근했을 때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것 중 하나인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학계에서도 진화론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막강하다.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는 진화론의 키워드는 ‘적자생존’ ‘자연선택설’ 등이다. ‘인류는 갈수록 두뇌가 발달하며 신체 또한 더 나은 형태로 진화한다. 그러므로 현재 인간이 지금까지는 가장 진화한 인류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하나의 학문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흥미가 반감할 것이다. 진화론에서도 물론 다른 주장이 있다. 인류 진화에 관해 연구해온 이언 태터솔은 그의 책 ‘인간되기’에서 일반적인 인류 진화의 개념을 전복한다. 태터솔은 인류 진화가 하등한 상태에서 고등한 상태로 ‘발전’해왔다는 통념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태터솔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진화의 정점이 아니라 진화 계통수의 수많은 잔가지 중 하나이다. 또한 아주 오래전 인류, 심지어 구석기 동굴인의 경우에도 결코 ‘원시성’을 대입할 수 없다. 동굴인이 미개하고 원시성을 안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인류의 선입견일 뿐이다. 그들이 남겨놓은 동굴벽화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예술적인 인류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태터솔의 주장이다. 선입견을 깨뜨리는 것이 태터솔이 이 책에서 의도하는 바 중 하나다.
태터솔 역시 이 책에서 인간이 다른 생물 종과 구별되는 특징을 언급한다. 예술적 창조 능력, 직립보행, 도구 제작 능력, 언어 사용, 의식 사용 등이 그것이다. 이중 특이한 대목은 체온 조절 때문에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태터솔의 주장이다. 열에 민감한 뇌가 찜통더위로 인해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열을 피해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태터솔은 유독 오래전 인류의 탁월한 예술 창조 능력을 높이 산다. 구석기 시대 동굴인들의 예술 창조 능력이 그들이 결코 미개하거나 하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태터솔의 주장의 가장 큰 근거가 될 정도다.
태터솔은 진화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변화의 축적이 아닌 다양화와 종 분화에 무게를 둔다. 따라서 인간에 관한 한 진정한 진화는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언 태터솔 지음·전성수 옮김·해나무·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