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게으름과 정욕, 나쁜 것만은 아니다
조지프 엡스타인 외 지음 김시현 외 옮김 민음in 각권 9000~1만 원
시기, 탐식, 화, 게으름, 탐욕(인색), 정욕, 자만. 이것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체계화한 7가지 대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혹받기 쉬운 이들 욕망은 이미 오래전 체계화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대다수 사람에게 그릇된 것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에서 언급된 것처럼 몽땅 금기시되지는 않는다. 이중에는 게으름과 정욕처럼 오늘날 오히려 덕목으로 재해석·재평가하는 것도 있다.
뉴욕 공립도서관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함께 기획해 현재 미국에서 각광받는 연구자, 작가, 비평가들이 집필한 ‘욕망의 심리학’ 시리즈가 번역, 출간됐다. ‘7가지 대죄’로 인식됐던 욕망을 각각 한 권씩 다뤄 7권으로 출간했다. 저자들은 인간의 치유할 수 없는 약점이자 ‘죄악’으로 여겨져온 욕망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그것의 현대적 의미를 분석했다.
심리전문가인 조지프 엡스타인은 ‘시기’에 대해 고찰했다. 시기가 질투, 분노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상에게 왜 표출되는지, 남자의 시기와 여자의 시기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세세히 설명한다. 특히 반유대주의나 9·11테러 등 시기가 정치적·역사적인 불행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작가 프랜신 프로즈는 ‘탐식’을 논한다. 먹을거리와 관련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다이어트 강박관념에 찌들어 있으며 비만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탐식’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과거 쾌락의 하나로서 끔찍한 죄악으로 치부되었던 탐식이 현대사회에서는 누가 뭐라고 꾸짖기 전에 스스로 걸러내야 할 질병이 되어 버렸다.
‘화’는 7가지 욕망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화를 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정, 대인관계 등을 해친다. 심하면 살인도 유발한다. 전쟁과 학살도 엄밀히 따지자면 화에서 비롯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화는 그야말로 ‘죄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화에 대해 미시적으로만 보지 않고 거시적으로 확대해 전 세계적인 문제점으로 파악한다.
이와 같은 구성과 분석으로 웬디 와서스타인은 ‘게으름’을, 필리스 티클은 ‘탐욕’을, 사이먼 블랙번은 ‘정욕’을, 마이클 에릭 다이슨은 ‘자만’을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게으름’과 ‘정욕’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게으름(느림)을 예전과 달리 되레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언급한다. 게으름을 다룬 웬디 와서스타인 역시 “어떤 자기계발법도 게으름이 주는 평화를 따르지 못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게으르고 나태하게 지내라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마음은 게으르고 몸이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을 탓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완벽한 게으름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성이 개방되고 자유로워진 현대사회에서 ‘정욕’ 또한 긍정적인 욕망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많다. 과거에는 정욕을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동물적인 욕망으로 터부시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신체가 건강하고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정욕에 부드러운 시선을 보낸다. 심지어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꾸밈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물론 부문별한 정욕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정욕 자체보다는 인간의 원천적인 욕망인 정욕을 무작정 억누르는 것을 더 죄악에 가깝게 여긴다. ‘정욕’의 저자 사이먼 블랙번은 정욕의 실체를 밝혀내고 그것에 씌운 오명을 벗겨낸다.
인간의 욕망을 논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다.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통찰력을 선사할 것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바이칼 키스
바이칼에서 그린 초원의 서사시
<권호욱 기자>
신대철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냈다. 1977년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 출간 이후 2000년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를 내기까지 무려 23년 동안 침묵했던 시인은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뒤늦게 독자들에게 감동적인 시편들을 선사한다.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이번 시집은 많은 사람이 신비롭게 생각하고 있는 바이칼호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이전에 시인이 보여주었던 암울하고 비극적인 모습과 정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린 시절 화전민으로 살았고 비무장지대(DMZ)와 악명 높은 실미도에서 군대생활을 했던 시인의 시가 마냥 서정적이고 휘황찬란할 수는 없었다. 남북으로 분단된 이 땅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시인이 등단 이후 20년 넘게 시를 쓰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다.
한반도 내에서 받은 아픔을 엔간히 치유한 것일까. 시인은 눈을 대륙으로 옮긴다. 중국, 시베리아, 몽골, 알래스카… 광활한 대륙의 웅장한 자연과 다양한 풍속을 접한 시인은 좁디좁은 한반도의 아픔과 눈물이 혹여 누추하게 느끼지는 않았을까.
이번 시집에서는 유독 자연의 위대함, 섬세함, 생명성 등을 노래한 대목이 자주 눈에 띈다. 바이칼호와 그 주변 풍경, 그곳의 풍속을 일일이 묘사하지는 않았어도 그 분위기가 읽는 이의 가슴팍으로 덥석 안겨 오는 것은 분명 시인의 탁월한 솜씨다. 소설이 아닌 시로 풍속과 정서와 분위기를 이렇게 훌륭하게 담아내고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은 보기 드물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어가다 보면 마치 그곳 사람이 되는 듯 동화되어간다. “노인이 웃으면서 인제 한 가족이 다 되었군요. 지붕 얹고 예서 겨울을 나시지요 하고 농을”(‘황야에서 5’) 받은 사람은 시인뿐만 아니다. 시를 읽는 사람도 그런 기분이 든다.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은 ‘이야기시’의 냄새를 풍긴다. 시인은 결코 중언부언하지 않으면서 한 편의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시인은 때론 길게, 때론 짧게 호흡을 조절하며 대륙으로, “걸어갈수록/되돌아오는”(‘초원의 빛’) 것처럼 드넓은 초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시에 정이 들고 시인과 정이 들고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정이 들 것이다. 이들과 정이 들면 이들과 ‘한통속’이 될 것이다. “정들이면 누구나 한통속이 되는 것!”(‘사이 2’)이기 때문이다.
|신대철 지음·문학과지성사·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