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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민주당 대표

입력 2007.05.29 00:00

‘통합 살생부’는 절치부심의 산물>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5월 17일 시·도당위원자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5월 17일 시·도당위원자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칼 같은 기질’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신민당 대변인 시절의 일이다. 결혼예정이었던 그의 보좌진 중 한 사람이 박 대표를 아는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 중 몇 사람은 결혼 당사자와 잘 모르는 사이였고 그중에는 ‘박상천 대변인’과 인연이 깊은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박상천 대변인을 찾아온 사람들에게까지 의도적으로 청첩장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박 대표는 당시 이 일에 매우 화를 냈다. 청첩장을 보냈던 사람은 거의 결혼생활 시작과 동시에 실업자가 돼야 했다. 철두철미한 성격인 박상천 대표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박상천 대표는 정치인치고는 융통성이 적고 깐깐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만큼 자기 일에 철저하다. 평민당·신민당 대변인 시절엔 ‘논문 쓰는 대변인’으로 통했다. 논평과 성명에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장문의 ‘대변인 발표문’을 내놓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 때문에 늘 데드라인을 넘기는 ‘박상천 대변인’은 석간신문 기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그의 성품 탓이었다.

이같이 지나치게 고지식한 태도는 가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소신행동’을 낳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초대 법무장관 시절, 박상천 대표는 외무장관이 하는 게 관례인 협정서명(한·미 범죄인인도협정)을 끝내 자신이 했다. “범죄인인도협정은 DJ(김대중 전 대통령) 방미의 최대 성과이니 만큼 내가 나서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은 그의 풍부한 학식과 논리적 사고에 묻히고 말았다. 물론 그 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2002년 대선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의회’를 주도하면서 그의 운명은 달라졌다. ‘후단협’은 사실상 노무현 후보 비토그룹이었다. 인과응보였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리과정에서 박상천 대표는 친노그룹으로부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하는 ‘역적 중 역적’으로 지목받았다. 박상천 대표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 발의와 가결과정에서 당시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결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 신세가 다시 역전됐다. 범여권대통합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을 향해 박상천 대표가 민주당 통합 요건을 제시했다. 친노그룹과 좌파인물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통합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를 ‘박상천 살생부’라고 부른다.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박상천 대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박상천 대표가 당한 설움과 그의 물러서지 않는 성격을 모르고 하는 셈이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