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평전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
박홍규 지음·개마고원·1만8000원
사람들은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는 패배했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이없게도(?) 현직 법대 교수다.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에 물든 전 세계가 비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한다고 개탄한다. 자동차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에서 일하고 잠자는 현대인들의 무미건조한 삶을 아쉬워한다. 박 교수는 그래서 사회주의를 역설한다. 이 대목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박 교수가 꿈꾸고 역설하는 사회주의는 교조적인 사회주의가 결코 아니다. 국가가 엄격히 통제하는 경직된 사회주의도 아니다.
그가 꿈꾸는 사회주의는 ‘일상 속의 사회주의’다. 즉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노동을 즐거움으로 인식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행복한 노동과 아름다운 생활’이다. 여기에서 평등, 건강, 행복,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등이 모두 비롯한다.
박 교수가 꿈꾸는 사회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주장한 바였다. 박 교수는 모리스가 평생 주장했고 몸소 실천했던 사회주의를 모범으로 삼았다. 모리스와 그의 사상을 그리워하고 흠모한다. 이를 대변하는 책이 ‘윌리엄 모리스 평전’이다.
모리스는 우리나라에 현대 디자인 공예이론의 선구자로서 몇몇 미술 분야 학자들을 위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주의자로서 모리스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모리스를 마르크스주의에 포함되는 한 인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는 독특한 사회주의자다. 모리스는 자유로운 노동에 기초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연과 조화한 생태적인 삶을 이상으로 추구했으며 인간사회를 강제가 아닌 공동체 단위의 자유로운 자치로 꾸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삶과 세상을 예술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모리스의 사상을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이란 말로 요약한다. 이를 위해서는 삶의 간소화와 아름다움과 품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시도하는 전원생활, 공동체 자치생활은 모리스가 일찍이 역설했던 것이다.
모리스의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동이다. 그는 노동이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자연스러움을 상실했다. 즐거움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것, 심지어 고통이기도 하다. 예술은 노동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본 모리스는 그에 기반을 두고 시와 소설을 지었고 그림을 그렸으며 건축을 디자인했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크게 성공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면 모리스가 이상으로 설정한 사회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한 호빗족의 사회는 바로 모리스가 꿈꾼 사회였다. 자연과 더불어 강제 없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노동을 즐거워하는 호빗족 사회는 모리스의 주장을 가장 잘 반영한 사회다. 톨킨이 모리스의 제자였고 스스로 모리스의 제자임을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모리스가 살았던(1834~1896) 19세기 영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모리스가 ‘생활사회주의’ ‘생태사회주의’를 꿈꾼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 체제가 급속도로 발달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자들은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고 급기야 여기저기서 투쟁의 길이 뚫렸다. 모리스는 급성장하는 초창기 자본의 힘을 온몸으로 겪었고 그것의 비인간적인 면까지 속속들이 보았던 것이다.
모리스의 사상은 다분히 이상주의에 가깝다고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노력과 실천은 모두 허사였다. 냉엄하게 보자면 그는 ‘실패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새삼 저자가 윌리엄 모리스를 조명하는 까닭은 이 시대가 모리스가 살던 시대와 별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인터뷰 | 첫 소설집 ‘입술’ 펴낸 이명랑씨
“나만의 인물 창조해내고 싶어요”
작가 이명랑씨가 첫 소설집(‘입술’, 문학동네)을 펴냈다. 1997년 시로 등단해 이듬해 장편 ‘꽃을 던지고 싶다’로 소설가로 데뷔한 그가 등단 10년 만에 소설집을 낸 것이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예지에 발표했던 단편 9편을 담았다. 기간만 따지자면 무려 7년이지만 지난 2년간 발표했던 작품을 주로 실었다. 특이한 점은 1999년 이후 2004년까지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랑씨는 “그 시기는 장편에 집중했던 때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작가 이명랑’을 알린 것은 ‘꽃을 던지고 싶다’ ‘삼오식당’ ‘나의 이복형제들’ 같은 장편소설이다. 장편만 써오다가 단편을 쓰는 일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이명랑씨는 “어떤 것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없다”며 “나의 경우, 글감이 올 때 장편, 단편 구분해서 온다”고 말한다.
이번 작품집에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꽤 다양한 작품이 수록돼 있다. 영등포시장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펄떡펄떡 그려낸 이전 작품과 흡사한 작품은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챘다’정도다. 대부분 작품에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며 등장인물들은 자꾸만 내면에 침잠해간다. 작가 자신도 “내 안에 이렇게 무거운 면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다. ‘삼오식당’에서 보여준 생동감에 반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소멸’을 탐색하고 그것의 의미와 본질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집을 읽다 보면 소멸했다고 보이는 지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장면과 자주 마주친다.
작품이 변한 까닭을 묻는 질문에 이명랑씨는 “데뷔하기 전부터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며 “그 작품을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당부한다. “더 나은 소설을 쓰기 위해 내 연장통에 다양한 연장을 채우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랑씨가 소설가라는 이름을 걸고 꼭 쓰고 싶은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그는 작품 내용보다는 인물에 진한 방점을 찍는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전범으로 삼는 그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살아 있는 인물들”이라며 “그런 인물을 꼭 창조해내고 싶다”고 다짐한다. 다시 말해 “도스토예프스키 하면 금방 떠오르는 인물이 있듯이, 사람들이 이명랑 하면 탁 떠올릴 수 있는 나만의 인물을 창조해내는 게” 그의 꿈이다.
이명랑씨는 “지금이 소설가로서 가장 행복한 때”라며 미소 짓는다. 그 까닭은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