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선택과 포기’로 행복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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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 ‘선택과 포기’로 행복 훈련

입력 2007.02.13 00:00

주어진 조건 주체적 활용하고 지출조정 과정 소화하면 만족도 커져

집이 좁아서라기보다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다.

집이 좁아서라기보다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다.

“승권아, 어디에 있든지 몸 건강히 잘 있거라.”

6·25전쟁 이후로 생사를 알 수 없는 큰외삼촌 생일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쇠고기국을 끓여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가꾼 복숭아밭에는 손으로 껍질을 벗겨 먹는 달콤한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제 20년쯤 됐다.

“형님 환갑잔치를 크게 해드릴 거다.”

술을 드시면 늘 이렇게 큰소리치던 작은외삼촌도 벌써 돌아가셨다.

“네 어머니 살았을 때 꼭 오빠를 만나게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말하던 아버지도 멀리 떠나셨다. 어머니는 이제 70대 중반, 북에 계시는 큰외삼촌은 80을 내다볼 나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외삼촌이 북한에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게 5~6년 전인가 보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놓았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많은 신청자에 비해 그동안 간간이 있었던 상봉자는 턱없이 적은 수였을 테니 순서가 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자꾸만 ‘공정하게 선정하는 거야?’ 하는 의문이 든다. 순서의 공정함도 따져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상봉자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나아가 분단상황이 끝나는 것이다. 이 어른들에게 의료비·주거비·교통비 등을 따지는 노후설계 비용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사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늘 눈에 보이고 돈으로 따져지는 것에 마음이 끌리곤 한다.

무리한 아파트 청약의 이면엔 돈 된다는 심리가 있다 “청약했는데, 운 좋게 46평 아파트에 당첨됐어요. 온갖 돈 다 털어 중도금 넣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지난 연말 이후로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돈으로 잴 수 없는 인생목표를 놓치지 말자는 강사 주장에 마음이 흔들린 영향으로 보인다. 그런 추상적인 얘기에 앞서 이렇게 되물어본다. “앞으로 아파트 값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돼도 그 아파트에 입주하겠습니까?” 아이들이 커서 방 세 개는 필요하다. 사업상 이 정도 아파트에는 살아야 한다. 이런 식의 이유를 들지만, 사실 핵심은 사두면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위 고객의 부모는 아들의 중도금을 내기 위해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입주 전까지는 아들 집이 좁아 시집간 딸 집에 가 있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사위의 어머니는 자식 내외 편히 살라고 혼자 계신다. 사위가 장인·장모를 모시면 그 사위는 친가 식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처남네가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라고는 해도.

이렇게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하면서까지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할까.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싼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무리수를 두는 건 ‘돈이 된다’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 이 고객에게 당첨된 걸 축하해야 할까, 포기하라고 해야 할까. 보통은 가장 싼 대출금리와 지출여력에 맞는 상환기간을 설계해준다. 고객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금융조건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이렇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왜 꼭 그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죠?”

가장 훌륭한 투자는 자녀에 쏟는 시간 투자 “몸에 직접 닿는 물건에 많은 돈을 써라.”

가장 훌륭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이상훈 기자>

도올 김용옥의 말이다. 속옷이나 이불, 베개 등을 천연섬유로 된 비싼 것으로 쓰라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외투, 귀걸이, 양복 등에 더 많은 돈을 들인다. 부동산이나 금 등 실물자산에 비해 금융상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예·적금이나 대출에 비해 보험상품은 더 추상적이다. 오지 않은 미래 위험을 현재 돈과 맞바꿔 대비한다? 보험영업을 워낙 광범위하고 공격적으로 해와서 그렇지 사실 쉽지 않은 개념이다.

보험상품 구입에 비해 교육비 투자는 더 보이지 않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투자(?)다. 그런데 교육비 투자를 꼭 돈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요새 느끼는 건데, 엄마아빠는 나한테만 투자를 너무 많이 했어. 사실 투자할 가치는 온달이가 더 많을 텐데 말이야.”
고등학교 1학년인 큰애가 학교 일정으로 필리핀에 머물던 중 보낸 e메일이다. 동생들에 비해 자기에게 많은 돈을 들이는 거 아니냐고 묻고 있다. 그러나 돈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투자다. 더 높은 수준의 투자는 시간을 쏟는 것이다. 거기에 더한다면 관심과 애정이다. 관심과 애정과 시간을 쏟아 자식에게 올바른 생활습관과 사고력 훈련을 시키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식교육이다. 그게 어려운 사람은 그저 돈으로만 때운다.

금융기법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 재무설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무설계를 온라인화하자는 의견도 자주 나온다. 목적자금 설계를 온라인으로 하는 사람은 꽤 된다. 온라인으로 질의응답하는 사람도 제법 된다. 그러나 전면적인 온라인화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른다. 막대한 자금이 들 거라는 점보다 더 중요한 건 관심과 의지의 측면이 더 중요한 재무설계가 자칫 금융수치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재무설계도 궁극에는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성공과 행복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 측정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다. 보도 섀퍼가 ‘돈’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정의를 음미해보면 재무설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성공=주어진 조건의 활용 정도’
‘행복=처한 상황에 대한 만족 정도’

활용 정도란 용어는 공장의 가동률이나 자본의 회전율과 비슷하게 이해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조건은 다 다르다. 문제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이다. 이 점은 바로 행복과 통한다. 활용을 주체적으로 하게 되면 성과는 둘째치고 당연히 만족도가 높아진다. 다시 말해 재미있고 즐겁다. 그것이 행복 아닌가.

어차피 돈과 자원은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 많고 적음은 상대적일 뿐이다. 핵심은 ‘내’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는가 하는 점이다. 어린 중학생의 선택과 포기를 살펴보자.

중학교 1학년인 온달이의 올해 개인목표는 해외여행이다. 지난해 누나가 넉 달 동안 필리핀에 다녀왔고, 동네 친한 동생도 두 달 동안 엄마랑 아일랜드에 다녀온 걸 보고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그럼 해외여행 다녀올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평소 온달이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를 따져보았다. 검도 8만 원, 피아노 9만 원, 영어 12만 원으로 합 29만 원이다. 2006년도에 포도에셋의 재무상담을 받은 고객들의 사교육비를 조사해보면 중고생 1명당 들어가는 돈이 평균 40만 원 정도다. 그에 비하면 온달이의 사교육비는 평균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경비를 새로 마련하는 건 부모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고 해서 부모가 스스로 좌절할 필요도 없고, 자녀가 부모의 능력을 탓할 문제도 아니다. 중요한 건 현재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를 터놓고 얘기하는 것이다.

“온달아, 여행경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온달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피아노 그만두면 1년에 108만 원을 모을 수 있잖아. 그리고 그 동안 모아놓은 돈 50만 원을 합쳐서 다녀올래.”

물론 하던 걸 다 하면서 새로운 욕구를 채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쓸 돈은 한정돼 있다는)을 인정하고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더 훌륭한 훈련이다. 주어진 조건을 충분히 다 활용하고 그 과정을 스스로 소화한다면, 온달이는 스스로 만족할 것이다.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다. 눈에 보이는 재물과 돈만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체적 결정과정 그리고 그에 따른 성공과 행복을 잘 살펴볼 일이다.

<이광구 포도에셋 기획팀장>